아이가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엄마 울지마. 나는 괜찮아. 어린 것이 오히려 저를 위로합니다. 빡빡 깎은 머리가 부끄럽다며 학교가기 싫다고 했는데. 수술실 문 앞에서 잡았던 손을 놓습니다. 코 끝이 찡해져 눈물을 참기 힘드네요. 울면 안되는데···.
우리 딸 혜민(가명)이는 7살입니다. 두 달 전 외갓댁에서 밥을 먹을 때였어요. 외삼촌이 물 떠오라고 시켰더니 피식 쓰러지더군요. 침까지 흘리며 쓰러진 아이에게 혼을 냈습니다.
그런데 모야모야병 때문이라네요. 대뇌혈관에 있는 피가 점점 말라가는 몹쓸 병이랍니다. 혜민이는 인공혈관을 넣기 위해 저 섬뜩한 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요,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아야 했거든요. 아이가 자주 넘어져 다쳤을 때, 머리 아프다며 투정부릴 때 알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텐데. 남편과 헤어진 지 두 달만에 아이가 저렇게 된 것이 우연일까요. 누군가 뿌려놓은 저주일까요. 제 못난 탓인데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3년 전, 남편은 절친한 친구의 사업 보증을 섰습니다. 집을 날렸고 빚을 떠 안았습니다. 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월급을 차압당하자 남편은 직장을 그만뒀고 PC방을 전전하며 게임에 몰두하더군요. 현실을 도피하지 말자고 다퉜고 제대로 살자며 부둥켜 울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어요. 남편은 오히려 아이에게까지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고아원에 보내자며 아이들 옷가지를 챙겼을 때 저는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그 기억 때문일까요. 혜민이는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혈액을 아빠에 대한 증오로 채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날 그 섬뜩한 혜민이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동생 혜진이가 '곰 3마리'을 부를 때 "우리는 아빠곰 없어."라고 외치던 그 악에 받친 얼굴.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을 한장 한장 찢어내던 그 때, 혜민이만큼 저도 서러웠습니다.
지난 학기에 혜민이가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고 집으로 뛰어 들어왔어요. "엄마, 나 100점 100점 받았어." 콩콩 뛰던 천진난만한 아이가 자꾸 떠오릅니다. 아빠없는 아이라고 친구들이 놀려대도 엄마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무는 아이. 한창 뛰어놀 나이에 또래보다 훨씬 의젓한 모습이 오히려 슬픕니다. 가족그리기에서 아빠만 쏙 뺐다고 혼을 냈을 때 혜민이가 그랬습니다. 엄마는 나 버릴려고 하지마.
미안한 얘기지만요, 우리 셋은 행복했습니다. 20만 원 월셋방에 들어갔고 건어물가계에서 짬짬이 일을 해 60만 원은 거뜬히 벌었거든요. 엄마한테 보여준다며 어눌하게 바이올린을 켜던 혜민이에게 이제야 엄마노릇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항생제에 취해 잠을 잡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새끼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데···너무 힘이 듭니다.
28일 오전 10시쯤 동산병원에서 만난 이경희(35·여) 씨는 수술실 앞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눈물을 훔쳤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월 16만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이 씨는 1차 수술비 5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아이 수술부터 시키고 보자했건만 돈을 마련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씨는 "이웃, 친지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도 한두번이지 염치가 없다."며 주저 앉았다. 모야모야병은 뇌혈관 혈액이 사라지면서 작은 모세혈관이 뻗어나가는 희귀병으로 작은 모세혈관의 모습이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 것과 흡사해 붙여진 병명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 씨는 병원 밖 공중전화부스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엄마, 미안한데 혜민이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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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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