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릴레이 이런 삶.끝] 김현기 서울시의원

김현기(金顯基·50) 서울시의원은 어릴 적부터 정치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취직해야 하는 처지였음에도 그때 꿈을 영 버릴 수는 없었고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뛰어들게 됐다. 물론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적지 않았고 굴곡도 있었지만 정치 입문 18년만인 올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에 당선됨으로써 꿈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김 의원은"일반 서민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서민 정치론을 폈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이 이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지역구는 부자 동네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쪽인 게 의아하다고 했더니 "강남구에 속해 있지만 기초생활 수급자가 7천 가구나 되는 곳"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에 입문하기 직전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꿈이었기에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 왔다. 1974년 철도고를 졸업하고 영주지방철도청에서 근무하다가 1981년 서울의 의료보험관리공단으로 옮긴 후부터는 방송통신대와 동국대 행정대학원에 잇따라 진학, 행정학 분야의 학·석·박사 학위를 모두 땄으며 몇몇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3대 국회 때인 88년 7월 통일민주당의 정책전문위원 공모를 보고 정치권에 들어갈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뒤이어 의원 보좌관으로 옮겨 15대 국회 말인 2000년까지 활동했으나 모시던 의원이 16대 총선에서 낙선하는 바람에 정치권을 떠나야 했고 "그때부터 방황하게 됐다."고 한다.

회사를 운영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이 회사에 들어갔으나 정치에 대한 꿈은 더욱 간절해 졌고 급기야 17대 총선을 앞두고 고향인 영주에서 출마를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공천에서 밀리자 출마를 포기한 뒤 경쟁했던 후보를 지원, 국회 보좌관으로 다시 들어갔고 올해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하게 됐다.

정치인을 선망하게 된 것은 영주초교 5학년 때. "지역의 국회의원이 마을에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날, 주민들과 함께 점등식을 갖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영주중학교를 졸업한 후 국립인 철도고로 진학키로 한 데는 가정 형편도 작용했었지만 "학교가 서울에 위치,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했었다."는 것. 학교 사정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생활비를 마련키 위해 자장면 배달을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