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말과 글이 흐르는 풍경)높고 또 쓸쓸한

유난히도 눈빛이 총총했던 우리 큰형은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의 칭찬과 기대의 말씀들을 혼자 받아먹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총기가 워낙 뛰어났을 뿐 아니라 부처님 같은 표정에다 걸음걸이 하나에도 비범함이 뚝뚝 흘러, 장차 세상을 흔들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답니다. 형이 면소재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이웃 동네까지 그 소문이 파다했으며, 동네 골목에서 뛰놀던 꼬맹이들조차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판이 나지 않으면 으레 형한테 달려가 솔로몬의 재판을 받아내곤 했습니다.

큰형이 읍내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의 천문학과에 장학생으로 합격했을 때, 제일 기뻐한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농사일에 파묻혀 평생을 소고삐 잡고 걸어오신 아버지는, 큰형을 일찍부터 큰 도회지로 유학 보내지 못해 늘 마음 아파했으니까요. 비록 법관이나 의사가 되는 공부가 아니라 서운하긴 했지만 밤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새록새록 눈뜨는 수많은 별들 모두가 형이 공부하는 것이라며, 아버지는 하늘을 다 차지한 듯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런데 형이 대학 2학년이 되던 여름방학 때부터, 신기한 서울 이야기를 한 가방 들고 오던 큰형 대신 웬 낯선 아저씨들이 자주 찾아와 우리 집 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아버지를 만나 수군수군 귓속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낯선 아저씨들이 다녀간 날은 유난히도 날이 일찍 저물고 뒷산 그늘이 마당에 두껍게 쌓였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윗목에 앉아 줄담배를 태우시던 아버지의 깊고 잦은 한숨 사이로 소쩍새 울음소리가 애절하게 파고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벼논의 참새 떼를 쫓다 잠에 곯아 떨어진 어느 가을 밤, 심하게 다투는 소리에 눈을 뜨니 아! 우리 큰형이었습니다. 숨을 죽이며 이불깃 너머로 본 형은 예전의 형이 아니었습니다. 외계인처럼 퀭한 눈으로 푸른빛을 쏘아대며 큰형은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있었습니다. 명왕성까지 가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용서해 달라는 큰형을 내려다보며, 아버지는 또 풀물 벤 손으로 큰형의 손을 꼭 잡고, 서울의 그 높은 하늘에서 내려오라고, 내려와 논밭에 발목 묻고 같이 살자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하고 계셨습니다.

그날, 늦가을 밤 마당가의 황량한 바람 속에 아버지를 세워 둔 채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삽짝 밖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별 총총한 하늘로 날아 간 우리 큰형님. 명왕성까지는 무사히 갔는지,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식 한 자 없습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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