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세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에서 당초 예정된 20분을 훨씬 넘긴 1시간10분 동안이나 '격정적인' 심경을 토로했다. 핵심은 범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자신에게 각을 세우고 있는 고건 전 총리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현 열린우리당 의장)에 대한 직격탄이다.
◆세 사람 모두 대권주자로 적절치 않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이 임명했던 각료에 대해 원색 공격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고건 전 총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실패한 인사'라고 단정했다. 정동영·김근태 전 장관에 대해서는 '욕만 얻어먹었다.'고까지 했다.
세 사람 모두 제각각이긴 하지만 범여권의 통합신당을 추진하고 있는 핵심 인사들이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이 주도하는 신당을 원하고, 정 전 통일부장관과 김 의장은 바닥을 기고 있는 지지율을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반등시키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 전 총리에 대한 직설적 평가와 달리 김 의장 등에 대한 발언은 간접적 측면이 있지만 부정적이긴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세 사람 모두 대권주자로는 적절치 않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직격탄 이유는?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돌출'이라기보다 '준비된' 발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시각이 많다. 인도네시아 등지를 순방하기 직전 당원에게 쓴 편지에서 통합신당에 반대하며, 당 지도부를 신뢰하지 말고 당원들이 나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날린 바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순방에서 귀국한 10일 이후 지금까지 '편지'와 관련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차분히 준비'했다가 작심하고 메가톤급 펀치를 날린 셈이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당 진로를 놓고 사분오열하는 열린우리당에 기름을 붇는 격이 될 것이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정 전 통일부장관은 원외이지만 여전히 열린우리당의 주류이다. 김 의장은 열린우리당의 현 지도부다. 두 사람은 아직 직접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지만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하는 한편, 당황해하는 기류다. 노 대통령의 움직임을 예상했지만 그렇게 강한 공격이 될 것이라 예상하진 못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발이 뻔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강수를 들고 나온 점에 미뤄 여전히 소수인 당 사수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노 대통령의 주도권 회복이냐, 고립이냐?
노 대통령은 대권 정국에서 국외자로 남아 있지만은 않겠다는 뜻을 이미 밝혔다. 그러나 이날 노 대통령의 발언이 주도권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
열린우리당의 세력분포에서 당 사수파는 소수이고, 노 대통령이 공격한 김 의장과 정 전 장관파가 다수다. 범여권으로 봐도 고 전 총리의 세력이 오히려 크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언급도 한 점에서 고립을 가속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이날 대통령이 "남북 관계에 있어 초법적인 통치행위가 성립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국민이 보편적으로 수용해 줄 때만 인정되는 것"이라 말한 부분이 그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은 국민이 보편적으로 수용해야 통치행위로 성립한다는 말과 같다.
어찌됐든 노 대통령은 이날 발언으로 대선정국에서 적극적 역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여권의 분열은 22일로 예정된 이번 임시회가 끝나고 나면 본격화 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