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 책을 읽는다)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고미숙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던 일인가를 알게 된다. 사회에 나와서 일에 매달리고,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면, 책을 끼고 살았던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혹시라도 다시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읽고,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길은 없을까 싶어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 괜히 쓴 입맛만 다실 때가 더 많다.

그런 나에게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대구가 아닌 서울에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학자 이진경과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중심이 돼서 만든 '수유+너머'는 작은 공부모임에서 시작해, 지금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연구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가 돼버린 곳이다. 두 사람은 모두 돈 버는 재주보다는 책 읽고 공부하는 재주가 더 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들은 임대료 비싼 서울시내 한복판에다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이 책, 고미숙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책은 인문학자인 고미숙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태동과 성장을 기록한, 아주 재미있는 일종의 보고서다. 지은이는'수유+너머'의 정체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노마드', 한곳에 머물지 않고 더 새롭고 더 즐거운 지적 유희를 찾아 끊임없이 배회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책 전체에 학문의 자유, 지식의 자유, 공동체의 자유를 넘어 이제는 삶의 자유까지 노래하려는 젊고 발랄한 노마드들의 행보가 펼쳐지며, 고미숙의 발랄한 문체는 그 여정에 독자들을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싶게끔 한다. 그래서 모든 형태의 자유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도전과 여행을 꿈꾸게 한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루쉰의'청년과 지도자'의 한 구절이다.

"그대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얼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을 할 것인가?"

정말 자유를 원한다면,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길 원하지 말고 스스로 길을 떠날 것이며, 혼자가 외롭다 싶으면, 당신과 손을 잡을 수 있는 친구와 연대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그런 친구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이진이(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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