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권의 책] 도토리신랑

가을 주제로 구수한 옛 이야기 30편

아동문학가 서정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봄이었다. 선생은 대구의 한 청소년단체 요청을 받고 학부모들 대상으로 강연을 왔던 참이었다. 우리 옛 이야기를 독특한 문체로 풀어내는 솜씨를 가진 작가라 평소 만나고 싶었다. 그가 쓴 글들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으로는 아주 재담이 넘치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좀체 숫기가 없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얼굴은 시골 아저씨 같았다. 대화를 나눌 때도 상대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신이 생각하는 소임, 아이들에게 우리의 옛 이야기를 읽혀야 하는 이유를 얘기할 때는 아이처럼 눈빛이 반짝였다. 쉰을 넘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이 배어 나왔다.

그가 이번에 새로 펴낸 '도토리신랑(보리 펴냄)'을 서점에서 만나고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시류를 좇아 포장만 그럴듯하게 만든 아동서적들의 홍수 속에서 그의 책은 아동문학가로서의 진정성이랄까, 이야기꾼으로서의 올곧음이랄까 하는 것들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도토리 신랑'은 그가 앞서 펴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따라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시리즈물로 간행된 이번 책은 가을을 주제로 한 옛 이야기 30편을 펼쳐보이고 있다. 서정오 선생의 글을 읽을 때면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아주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들어봤던 내용 같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독특한 문체에 있다. 이른바 '입말체(평소 주고받는 대화체)'라고 명명된 그의 문체는 한마디로 어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모양 꼭 그대로다. 그는 평소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듣고 즐기는 것이 옛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야기 말도 유별나서는 안 된다. 일부러 야단스럽게 치장한 말이 아니라 삶 속에서 그냥 쓰는 말, 스스럼없이 지껄이는 말, 이런 말이 살아 있는 이야기말"이라고 강조해왔다. 그의 글속에서는 '-습니다.'는 식의 서술어를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있더란 말이지.', '-했더래.', '-하거든' 식의 짧은 호흡으로 이뤄져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를 화톳불 앞에 앉혀놓고 밤을 구워가며 들려주는 얘기 식이다. 맛깔스럽다. 짧은 분량 가운데도 옛 이야기의 원형을 해치지 않으면서 재미와 건강한 교훈까지 주고 있다는 점도 책을 읽는 내내 미소 짓게 한다.

'도토리 신랑'에 나오는 얘기들도 그렇다. 세상살이를 슬쩍 비꼬는 이야기라든가 그냥 한바탕 시원하게 웃자고 하는 이야기, 둥근 보름달처럼 넉넉한 이야기와 빈 들판처럼 쓸쓸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도토리만한 신랑을 맞은 신부의 첫날밤 이야기도, 옛날에 있었을지도 모를 멋진 임금 이야기도, 돌미륵하고 장기 두고 장가간 노총각 이야기도 모두 재미나고 푸근하다.

이 책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을 읽다 보면 동심에 젖다 일순간 내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 일테니. 해리포터를 읽고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1.'도토리 신랑'에 나오는 단편들을 읽어보고 그 속에 담겨진 교훈을 찾아보자.

2.'도토리 신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이야기 하나를 골라 소리내어 읽어보자.

3.우리가 옛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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