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 호롱불/김몽선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죄어오는 퀭한 적막 밀어내며 밀어내며

내사마 우얄끼고 타는 속을 우얄끼고

문풍지 바람도 떠는 내 한 생은 절인 심지.

이슬 젖은 싸리 울을 자정 멀리 떠 보내고

와 이레 허기지노 무섭도록 까만 하늘

멍울도 후미진 가슴 쥐어짜서 홰를 친다.

허벅지로 삼아 내는 이 겨레 매운 넋은

핏물 자아 올린 천장 燒紙(소지)로 서성이다

잃은 땅 바람막이에 먼동으로 와 앉는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고, 구멍이란 구멍을 죄 찾아 막곤 해도 엄한의 외풍은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문풍지 바람에 떠는 호롱불빛. 불 그늘에 한쪽 무릎을 세운 채 바람을 막고 앉은 여인의 실루엣이 어립니다. 연방 이불깃을 당겨 어린것들을 덮어주는 모습은 이 땅 모든 어머니의 초상입니다.

감탕처럼 휘감겨오는 적막을 애써 밀어내도, 앞앞이 말 못하고 속속들이 애 터질 일은 왜 이다지 많은지요. 속절없는 몇 마디 사투리로 허기를 달래봅니다. 생이란 것이 그저 기름에 절인 심지만 같아서요. 한사코 핏물 자아올리는 물레만 같아서요.

이 땅 모든 어머니의 '타는 속'이 있기에 세상의 싸리 울엔 굵은 밤이슬이 옵니다. 또 그런 어머니의 '매운 넋'이 있기에 춥고 어두운 땅에 다시 먼동은 틉니다. 정초 덕담 삼아, 며칠 전 TV에서 본 조선조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글귀로 마음의 호롱불을 밝힙니다. 三陽載始萬象咸熙(삼양재시만상함희).

박기섭(시조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19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55%로 직전 조사 대비 1% 하락했으며, 부정 평가는 36%로 2% 증가했다. 긍정적...
금과 은 관련 상장지수상품(ETP) 수익률이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과 실물시장 공급 부족으로 급등하며, 국내 'KODEX 은선물 ET...
방송인 박나래와 관련된 '주사이모' 불법 의료행위 논란이 확산되며, 유튜버 입짧은햇님이 직접 시인하고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입짧은햇님은 '주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