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 대구문인협회장이 검게 탄 얼굴에 콧수염을 기르고 나타났다. 2월 25일 어머니 별세 후 좀처럼 나들이를 꺼리던 그였다.
"멋으로 수염 길렀느냐?"는 말에 그는 뜻밖에 "조심하는 마음, 그립고 서러운 마음으로 콧수염을 기르게 됐다"고 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 얼굴이 검어지고 몸무게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100일 동안 수염을 기른 채 다닐 것이라고 했다. 예전처럼 3년 상은 못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운 마음, 죄스러운 마음을 그렇게 라도 표시하고 싶다고 했다.
문무학 회장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자인 자식 없고,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불효자 아닌 자식 없지만 이토록 슬플 줄 몰랐다. 아흔다섯, 천수 누리셨고, 머지않아 떠나실 것이야 짐작하고 있었지만 떠나시고 나니 참 서럽다"고 했다.
장례식 내내 나이든 그가 '헉헉' 소리내며 울던 모습은 문상객들을 슬프게 했다. 어른이 된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소리내어 우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특별하지 않은 부모는 없다. 그러나 문 회장은 스스로 불효자라는 생각에 더욱 슬프다고 했다.
"어머니는 35세에 혼자 되셨어요. 아들 딸 주렁주렁 껴안고 힘겹게 살아오신 분이지요. 형이 백혈병을 앓았는데 그때 치료비로 300만원 빚을 졌어요. 빚에 짓눌려 지내던 시절, 내가 결혼했는데 신부에게 반지하나 끼워 줄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당신 손에 끼고 계시던 누런 금반지를 빼 주시며 결혼준비에 쓰라고 하셨어요."
문 회장은 염치없지만 '곧 다시 돌려드릴 것'이라는 마음으로 반지를 받아 결혼 비용으로 썼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다시 해 드리려고 하면 어머니는 '됐다' 하셨다. 비싼 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언제라도 해 드릴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언제라도 해 드릴 수 있었기에 오히려 차일피일 미루었고 끝내 해 드리지 못했다.
"어머니 염할 때 입이 합죽했어요. 왜 진작 이를 해 드리지 못했는지, 어째서 금반지를 돌려 드리지 못했는지, 생각할수록 기막힙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쓰라립니다."
문 회장은 "학창시절 '효행상' 받았던 것은 그때도 부끄러웠고 지금도 부끄럽다"고 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李, 기표소 나와 투표용지 들고 "반만 찍혀도 괜찮나"…선관위 "문제 없어"
박 前대통령, 주말 서문시장·수성못 방문…추경호 '총력지원'
'보수 총결집' 앞장선 朴 계산은…국힘, 이젠 투표율 높아야 이긴다?[금주의 정치舌전]
사전투표 1일차 대구 투표율 전국 최저…군위군 23% 독보적
10년 만에 '벽치기 유세' 꺼내든 김부겸…"이번에 안 바꾸면 언제 바꾸겠습니까"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