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섬유산업

전 세계 1인당 섬유 소비량은 10㎏ 수준이다. 반면 선진국들의 1인당 섬유 소비량은 40㎏ 이상이라고 한다. 선진국 국민이 옷을 더 많이 입는 것인가. 그렇다 해도 4배씩이나 옷을 더 구입하지는 않을 게다. 의류용 섬유가 아니라 산업용 섬유 소비가 급증한 때문이다.

산업용 섬유 소비량은 생활수준에 정비례하며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항공기'열차를 비롯해 스포츠'건축'토목'의료'인테리어 등 거의 모든 산업에 산업용 섬유는 '필수 원자재'가 되고 있다. '산업의 쌀'이 철이 아니라 섬유인 것이다. 실제 섬유는 철보다 가볍고 강하고 질긴 소재로 개발돼 각종 산업의 기초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 섬유산업이 '르네상스'를 맞은 것도 의류용 섬유 생산을 접고 산업용 섬유로 전환한 때문이다. 그렇다. 섬유산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라 고부가 첨단산업이다.

그러나 우리 섬유산업, 특히 대구'경북 섬유산업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지역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줄고, 은행들도 섬유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릴 정도다. 최근 한국섬유개발연구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조상호 전 원장은 지역 섬유업계에 苦言(고언)을 남겼다. 먼저 지역 섬유업계 CEO들의 의식변화를 촉구했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정부 지원 요구부터 쏟아내는 '求乞(구걸) 경영'에서부터 제 살은 물론 남의 살마저 깎는 '베끼기 경영'까지 낱낱이 지적했다.

5년 5개월간 지역 섬유연구소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관측한 조 전 원장의 쓴소리를 들으면서 지역 섬유업계가 1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구걸 경영'에 대한 따가운 지적과 더불어 심지어 CEO들의 주중 골프 논란까지 그대로다. 조 전 원장은 '2등 정신'을 털어내고 과감한 설비투자와 신상품 개발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 역시 10년 전 '밀라노 프로젝트'가 가동될 당시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代案(대안)이다.

10년 전 홍콩 직물시장에서 만난 한 섬유수입 에이전트(위탁판매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섬유업계의 새로운 라인업(line-up)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살아남아도 한국 섬유업계는 망할 것이다." 이 에이전트의 10년 전 예측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다. 지역 섬유산업의 부활 여부가 여전히 CEO들의 의식변화에 달려있다는 게 씁쓸할 따름이다.

조영창 북부본부장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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