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환희의 송가

연일 '경제 악재' 소식 전해져도/'합창' 들을 수 있는 여유 찾아야

'오 친구여, 좀 더 기쁨에 넘친 것을 노래하자꾸나.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과 같은 빛남, 낙원의 처녀여, 모든 사람은 형제가 되도다. 다 같이 환성을 올려라. 모든 것은 자연의 유방에서 환희를 마신다. 형제들이여! 그대의 길을 개선한 영웅처럼 즐겁게 뛰어가라. 백만의 사람들이여, 모두들 껴안아라. 세상이여, 창조의 하나님이 계심을 깨달아라. 그님은 꼭 살아 계시느니라.'

이상은 '환희의 송가' 중 일부분이다.

독일 유학시절 옛 서독의 수도였던 본(Bonn)에 있는 베토벤의 생가를 종종 방문했다. 본 인근 도시에 살았던 덕에 마음이 동할 때마다 들러볼 수 있었는데 갈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달랐고 특히 그의 머리카락과 생존 당시 사용하던 스케치북을 볼 때에는 마치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눈 듯했던 그 생생한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베토벤은 아홉 개의 교향곡을 작곡하여 그 중 제9번의 4악장에 합창을 삽입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아주 파격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는데, 그는 실러의 시 '환희의 붙임'을 가사로 1824년에 완성한 후,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게 작품을 봉정했다고 한다.

귀머거리가 된 그는 빈 시민들을 공연히 불신하여 베를린에서 '합창'을 초연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알아챈 빈 음악가, 평론가, 애호가들이 그가 초연을 꼭 빈에서 해줄 것을 간청하면서 모두가 그 일에 봉사할 것을 결의한 덕에 결국 그 유명한 제9번 교향곡 '합창'은 빈에서 첫 햇살을 보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 보여주듯이 그는 청중 쪽으로 등을 돌리고 모양만 내는 지휘를 한 후, 관객들의 그토록 열광적인 갈채조차 듣지 못하였다. 이것을 안타까워한 독창자가 그를 정면으로 돌려 세웠는데, 이를 보고 눈물짓는 부인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주인공 강마에가 이 작품을 직접 실연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으로 인해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악기상들의 매출이 급격히 증가함과 동시에 클래식음악회를 찾는 청중의 발길이 부쩍 늘어났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었다. 부디 이러한 현상이 꾸준히 이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현재 국내외의 경제사정이 매우 어렵다. 연일 전해지는 악재들 사이에 너무 위축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자. 1998년에 닥친 IMF도 온 국민들의 지혜로 거뜬히 극복하지 않았는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 주변을 채우고 있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한 번 더 향유하면서 밝은 미래를 설계해보자. 따지고 보면 '합창'이 탄생하던 그 시절보다 오늘날이 더 힘들고 어려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초등학교 시절 "음악가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결코 배가 고프지 않다" 하시던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아직도 내 귓가를 맴돈다. 고교시절에는 시내 유명한 음악 감상실 '하이마트' 구석 자리에 앉아 혼자서 미친 듯이 지휘하면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종종 있었는데, 정말로 그 순간만큼은 배고픔과 추위도 잊었다.

올해 4만 명이 다녀갔던 제5회 강원도 대관령국제음악제의 경제적 효과가 거의 14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려울 때라고 문화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 제4악장 '환희의 송가'를 한번 들어 보자. 연주회장을 찾으면 더욱 좋고 여의치 않으면 영상이나 음반을 통해서라도 감상해 보자. 그리고 우리 인생의 나이만큼 영혼의 나이도 느끼면서 삶의 깊이를 더해가는 올 한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남대학교 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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