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무자년을 보내며

서울광고대상의 대상을 받은 어느 대기업의 광고가 눈길을 끈다. 한 귀여운 젖먹이 아기가 쌔근쌔근 잠자고, 소파에 기어오르려 애쓰고, 느긋하게 젖병을 입에 물고, 웃는 일련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 인생에서의 행복과 웃음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인생을 80년으로 가정할 때 통상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먹고 마시는 데 9년…. 그런데 뭉텅뭉텅 흘러가는 그 시간들 속에서 정작 우리가 행복하게 웃는 시간은 평생 20일 정도에 불과하다니 새삼 놀랍다.

80년이 이럴진대 1년 단위로 잘게 쪼개본다면 정말이지 웃는 시간이란 손가락으로 꼽기도 힘들 것 같다.

어느새 한 해의 맨 끄트머리에 와있다. 이 순간에도 시간은 쉼없이, 끊임없이 재깍재깍 소리를 내는 시계 초침소리와 함께 흘러간다. 순식간에 가는 해 오는 해가 엇갈리는 그 역사적 순간이 기다려지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도 그만큼 커지는, 묘한 엇박자가 교차하곤 한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2008년에서 2009년으로 옮겨가는 시간의 漸移(점이)지대에 와있다.

올해도 국내외적으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 갔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이청준 선생, 탤런트 최진실 등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해외에서는 명배우 찰턴 헤스턴, 폴 뉴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났고 문호 솔제니친도 격동의 한 시대를 마감했다. 바로 며칠 전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영국 출신 극작가 해롤드 핀터와 9'11 테러를 예견했던 '문명의 충돌' 저자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세상을 하직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 그들이야 알 턱 없지만 같은 시대, 같은 지구에 발붙이며 살았던 인연만으로도 즐거워했던 우리 대중에게 그들의 부재는 아쉽다 못해 엷은 슬픔마저 느끼게 한다. 벌써부터 그리워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시간만큼 無情(무정)한 것이 없다. 잠시라도 되돌려준다거나 기다려 주는 법이라곤 없으니까.

지난해도 그랬듯이 이틀 뒤면 온 세상 사람들은 또다시 '해넘이'니 '해맞이'니 하며 시끌벅적거릴 것이다.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무자년의 시간들에 그저 감사하고 싶다. 새해 기축년은 희망과 꿈으로 설레는 한 해가 되시기를….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