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예능 방송은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였다.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MBC '무한도전''SBS '패밀리가 떴다'가 방송 3사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대표하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온 것.
하지만 2009년 연초부터 리얼 버라이어터의 '리얼'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때 아닌 암초를 만났다.
최근 방송작가협회에서 발행되는 잡지(방송문예 12월호)에 세 프로그램의 대본이 게재, '조작한 리얼'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6월 첫 방송 이후 예능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은 '패밀리가 떴다'였다. 현장 애드리브처럼 보이던 출연진들의 말이 고스란히 대본 속에 기록돼 있었던 것. 제작진은 "오프닝과 클로징 정도만 간단한 대본을 작성할 뿐"이라며 "대본에 의존해 촬영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시청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리얼리티에 웬 대본
시청자 입장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 때문에 마치 대본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포함한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대본이 있다. 대본의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적게는 3, 4명, 많게는 10명의 작가들이 매회 대본을 만들고 이에 따라 촬영을 진행한다. 이는 모든 리얼 버라이어티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밀리가 떴다' 대본이 새삼 논쟁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그 내용이 지나치게 세세하다는 점이다. 문제가 된 대본은 3회차 방송분 '강골마을 편'의 오프닝 부분.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의 대본엔 프로그램을 이끌고 진행하는데 필요한 간단한 대사만 주어져 있을 뿐인데 반해 '패밀리가 떴다' 대본은 이효리-유재석'유재석-대성'이천희-김수로'이효리-박예진 등 출연진들의 관계가 매우 상세하게 표현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 할머니'할아버지 집을 처음 찾아간 패밀리가 전화하는 내용은 물론 이에 대한 할머니'할아버지의 응대까지 고스란히 대본에 적혀 있다. "이따 밤에 닭들 뒤에 돌아다니니까 한 마리 잡아서 먹어!"라고 할아버지가 얘기하면 윤종신이 "근데 저희가 잡아서 먹어야 되는 거죠? 못 잡으면 못 먹는 거죠?"하고 묻는 식의 대사들이다. 이에 대해 '패밀리가 떴다' 제작진은 "유재석'이효리를 제외하면 김수로'이천희'박예진'대성 등 다른 출연진 전원이 버라이어티 첫 데뷔인 만큼 방송 초기에는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을 뿐"이라며 "현재 대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해명했다.
◆식상한 리얼 버라이어티
그러나 리얼 버라이어티의 문제가 비단 '대본' 하나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한계는 '베끼기' 도미노 현상이다. 애초 '패밀리가 떴다'는 한창 잘나가던 1박2일의 포멧을 그대로 가져와 논란을 낳았다. 남녀가 섞여 있고 매회 특별 게스트를 초청한다는 점을 빼면 1박2일과 별 차이가 없다. 한마디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1박2일이 메이저리그 투수 박찬호 선수를 게스트로 초대한 것도 '패밀리가 떴다'와 닮아 있다. 그동안 게스트 없이 고정 출연자 6명만으로 진행하던 포맷을 깨고 경쟁 프로그램 콘셉트를 빌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타 방송사에서 신설해 변종에 변종을 거듭해 온 게 방송가의 생리.
하지만 방송사들은 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넓히지 못하면 요즘 대세인 리얼 버라이티 또한 한순간에 외면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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