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누구나 후회를 합니다.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하고 그러면서 성숙해지겠죠. 우리 일상 뿐 아니라 역사 속 인물들도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위인전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있고, 그저 그런 역사 속의 조연 또는 패배자로 낙인 찍히기도 합니다. 실수를 통해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 해가 바뀌는 것은 바로 그런 계기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요? 실수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으니까요.
◆그 때, 좀 참을 걸
아침 출근 길에 사소한 시비 때문에 대판 욕지거리를 했던 직장인 김모(39)씨는 며칠 동안 마음이 찜찜했다. 따지고 보면 싸울 일도 아니었고, 그저 손 한 번 들어주며 사과 한 마디를 하면 끝날 일이었다. 출근길 바쁜 마음에 더디게 가던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로를 바꾼 김씨. 하지만 앞차는 덩달아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조금(?) 위험스레 추월에 성공했다. 기분이 나빠진 앞차 주인은 다시 김씨의 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로를 바꾼 뒤 바로 옆에서 달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럴거면 미리 속도를 내서 가든지'라며 김씨는 무시했고, 다시 한번 김씨의 차를 추월한 상대방은 교차로 신호에 걸리자 차에서 내린 뒤 대뜸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살다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지만 이런 욕설을 들으면 참기 어려운 법. 결국 같이 진흙탕을 구르는 심정으로 맞대고 욕설을 해댔다. 살벌한 말들이 오가면서 서로 '조심하라!'며 협박성 언사를 내뱉고서야 일은 끝났다. "앞차는 수입차였습니다. 괜시리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겠죠. 옳고그름을 떠나서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으면 그 지경까지 안 갔을 겁니다. 스스로도 못 났다 싶었고, 상대방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의류회사에서 물류일을 하는 이모(43·여)씨는 "지난해에 직장을 옮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남들은 다 승진하는데 자신만 못 한 이유가 컸다. 영업부 상사와 다툼을 한 것이 화근이 된 것. 물류 일을 제대로 모르면서 혼자서 아는 척하는 것이 꼴사나와 그랬다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하는 심정으로 끝장을 봤더니 해당 상사는 해고 됐지만 본인의 상처도 컸다. 윗사람들에게 '괜히 나이만 많고 성깔만 더럽다'고 찍힌 것이 영 찜찜하다. 그런데다 일만 더 많아지고 돈은 못 버는 지경이다. 회사는 아예 "당신 말고도 쓸 사람은 많다"며 협박을 한다. 한 푼이 아쉬운 이씨는 "그 때 그만 뒀어야 하는데. 지금은…."이라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조금 더 조심할 걸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김형민(34)씨는 8개월 된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후회가 밀려온다. 지난해 11월 아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아이를 돌보게 된 김씨. 침대 끝에서 놀고 있는 아들을 보며 '저러다가 떨어지면 많이 아플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심코 넘겼던 게 화근이었다. 정확하게 10초 후, 아이가 갑자기 몸을 돌렸고 우려했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졌던 것.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와 얼굴에 든 퍼런 멍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왜 그래?"라며 묻는 아내에게 사실대로 고했다간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 뻔한 상황. 겁에 질린 김씨는 "잠시 딴 데를 보는데 이 녀석이 마구 기어가더니 침대 끝에서 굴렀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 날 이후 가을산 단풍처럼 불그락 물들어가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미리 조심할 걸'라는 생각에 김씨의 속은 늘 쓰리다고.
직장인 윤모(34)씨는 질문에 "당장에 팍 떠오르는 건 없다"며 뜸을 들였다. 그만큼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더니 펀드 미리 안 뺀 일을 먼저 떠올렸다. "연초에 뺄까 말까 고민하다가 놓아두었더니 반토막나서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펀드 이야기는 온 국민이 공감하는 후회담이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
윤씨는 다음으로 차를 바꾼 이야기를 했다. 2006년말 승용차를 SUV 차량으로 바꿨다. 두 아이를 생각하니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 그러나 윤씨의 선택은 지난해 국제 유가 급등, 특히 경유값이 휘발유 값을 넘어서면서 재앙이 됐다. 윤씨는 "경유가가 고공행진하면서 승용차를 선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차를 거의 모셔두다시피 했기 때문에 일년간 5천㎞ 밖에 타지 않았다"고 했다. 외국 출장이 잦았던 윤씨는 달러화나 엔화를 좀 더 많이 사두지 못한 것도 후회스런 일로 꼽았다. 아울러 선거 때마다 보다 깊은 생각없이 한 표를 던진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회사원 장모(39)씨는 이른바 '밤샘모임' 때문에 부부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말았다. 공식적으로 외박이 허용되는 이 모임은 10년 이상 매월 한 번씩 친구나 인생 선배들과 해 오던 것. 어느 토요일 모임이 있던 날, 아내도 일 때문에 늦고 평소 아이를 봐주던 장모도 자동차 사고로 집 근처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장씨는 모임의 총무라서 빠질 수도 없는 상황.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한 장씨는 일단 모임에 갔고, 마침 딸 아이가 외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있겠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부담스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한 시간쯤 뒤에 다시 문자가 왔다. '딸 아이가 집에 가고 싶어하는데….' 무심코 장씨는 '그래? 어떻게 하지?'라고 답장을 보냈고 이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마음이 무거워진 장씨는 비교적 이른(?) 시간인 새벽 2시에 집으로 향했다. 집은 텅 비어있었고, 이튿날부터 아내는 본척만척 아예 말도 걸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으로 열흘을 보낸 뒤 아내가 던진 한 마디. "당신 아빠 맞아?" 문자 하나 달랑 보내놓고 딸 아이가 집에서 아빠와 함께 자고 싶어한다는 것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 못내 섭섭했던 모양.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후회 막급.
비서직에 근무하는 김은정(31·여)씨는 사장님과 눈이 마주칠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대외 일정을 정리하는 그녀에게 사장이 물었다. "내 일정에 '?(퀘스천마크)'가 언제 있지?" 대개 확실히 결정되지 않은 일정 뒤에는 '?' 표시를 하는데 어느날 그런 일정이 있는지 물었던 것. 그녀는 "네? 케션마크요?"라고 반문했다가 사장으로부터 "진짜 모르나? 너무 무식한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들었다. 사장이 자신을 너무 무시한다는 느낌과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머릿 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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