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믿었죠 그 精氣, 달았죠 金배지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당선 숨은 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쉽게 뱃지를 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엄청나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국회 의사당에 입성한다. '초등학교 반장도 논두렁 정기 정도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낮은 자리라도 선출직은 자신의 실력과 노력 못지 않게 여건과 운이 따라줘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반장이 그럴진데 국회의원은 어느 정도의 정기가 받쳐주어야 할 수 있는 것일까.

18대 국회에 진출한 초선과 다선 지역의원들이 국회에 입성하는데 뒤를 받쳐준 정기, 또는 꼭 정기가 아니라도 그들의 금배지를 있게 한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그들은 '훌륭한 부모님을 만났다'거나 '겸손이 최고의 무기였다','고향마을의 정기를 흠뻑 받았다', '시기와 운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한다.

3선의 김성조(구미을) 의원은 지금은 구미시 형곡동이 된 고향마을의 공동우물 '박샘'의 정기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박샘은 지름 2m, 깊이 1m 가량되는 작은 우물이었지만 마을사람 대부분이 이를 통해 생활할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기억했다. 김 의원은 다른 동네아이들과 함께 우물 주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아직도 담백하고 시원한 청량감을 주던 박샘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지금도 말한다. 그가 지방대학 출신으로 3선까지 올라서자 동네사람들은 "금오산 정기를 받은 박샘이 김 의원 고향집 옆에 있었고, 박샘이 금오산 정기를 고스란히 가두었다가 김 의원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줬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지극한 정성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생각하는 의원도 많다. 모친의 지극한 정성이 아들에게 미친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광림(안동)·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이다. 두 의원의 모친은 각기 다른 종교를 가졌지만 자신의 종교를 통해 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며 정성을 바친 것은 공통이었다.

무소속으로 당선돼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때도 당시 열린우리당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모친의 건강을 이유로 출마 제의를 거절한 바 있다. 그만큼 김 의원의 효성은 잘 알려져 있다. 여든 한 살인 김 의원의 모친은 신약과 구약성서를 8번이나 필사했다. 6번은 한글로 2번은 일본어로 필사했다. 글씨 한자를 쓸 때마다 아들이 잘 되기를 빌었고 그 결과가 자신의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것이 김 의원의 풀이다. 김 의원의 모친이 필사한 성경노트는 100쪽짜리 노트 88권에 이른다고 한다. 김 의원은 모친이 성경을 한 번 필사하는데 1년 정도 걸렸다고 소개했다.

재선의 주 의원의 모친(73)은 불교신자다. 모친은 4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리고 있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날마다 울진의 고향집 인근의 '동림사'에 가서 주 의원 등 2남2녀의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해오고 있다. 주 의원은 "어머니의 새벽기도가 당선의 원천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조상의 음덕(陰德)도 당선의 기틀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선대 조상들이 선산에 몰래 나무를 베러 왔다 들킨 사람들에게 "한 짐 나무를 해서 가라"며 넉넉한 정을 베풀었다고 했다.

3선의 이병석(포항북) 의원은 '어린 시절의 가난'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그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데다 여동생도 어릴 때 가난 때문에 잃은 아픈 상처가 있다. 그는 "어릴 때 젓갈장사를 하시던 모친과 함께 늦은 밤 동네 언덕을 넘어오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이때의 가난이 그를 강하게 조련시켰고 권력을 가져야겠다는 뜻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명규(대구 북갑) 의원은 재선이지만 북구청장에 세번이나 당선돼 사실 이 지역에서만 5선이다. 선거에서만큼은 내공이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원인을 늦깎이 사법고시 합격생이 갖게 된 겸손이라고 밝혔다. 그는 28살에 결혼한 뒤 사법고시는 34살에 합격, 곧바로 변호사에 뛰어들었다. 그 때 그는 스스로 '나는 잘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사법고시 공부를 하면서 6년동안 가정을 전혀 돌보지 못하고 공부만 한 한심한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합격했다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 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재선의 유승민(대구 동을) 의원은 지역에서는 흔치않은 2세 정치인이다. 부친인 유수호 의원 역시 변호사 출신으로 재선의원을 지냈다. 현직 판사인 유 의원의 형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석을 놓치지 않은 수재였고, 매형 역시 법률가다. 유 의원은 "아버지가 지녔던 강한 소신을 많이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를 하다가 2006년 대구 동을 재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 선거 초반에는 상대 후보에 비해 지명도가 낮아 애를 먹었다. 그러던중 "유수호 전 의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고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세를 뒤집는데 상당한 도움을 줬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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