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장실·쓰레기통, 일본 산에는 없다?

지난달 말 일본 규슈의 명산인 기리시마 연산을 오르기 직전이었다. 미야자키현의 한 관계자가 일본의 산을 오르기 전에 챙겨야 할 것을 권하던 중 눈에 번쩍 띄는 물건을 내놓았다. 그가 내놓은 것은 '휴대용 화장실'(게타이토이레:携帶 トイレ) 눈이 번쩍 뜨였다. 가로, 세로 각 1m 정도 크기의 휴대용 화장실은 스펀지 성분이 있어 소변은 물론 대변도 거뜬히 흡수한다는 말이 덧붙었다.

"이 휴대용 화장실을 꼭 갖고 가세요. 500엔이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연 보호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무도 거름이 있어야 잘 자라지 않느냐는 한국의 자연공생(?) 정서와 어긋나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간이화장실 정도는 설치해 놓는 게 더 낫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그 관계자는 "자연을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일본인들의 자연 사랑은 남다른 수준을 넘어 유별났다. 실제 기리시마 연산의 가라쿠니다케 정상에 오른 뒤 기함할 정도로 놀랐다. 산봉우리 정상에서 눈 밑 까마득히 떨어진 분화구 바닥의 높이는 300m. 하지만 안전 펜스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규슈관광추진기구 관계자도 이 부분에 대해 같은 답을 내놓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니까요"라고.

한국에는 있지만 일본에는 없는 것들 때문에 산을 오르면서도 짐짓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마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 화장실이 없고, 조난에 대비하기 위해 가져간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기 일쑤.

하지만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산의 시작점부터 특정 장소까지 얼마나 가야 한다는 표지판과 함께 산 정상까지 몇 분의 몇을 왔다는 것을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 뒀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합목'(合目)이라고 표시했다. 예를 들어 가라쿠니다케의 해발고도가 1,700m라면 170m마다 합목을 표시해둔 것. 다만 해발고도를 중심으로 표시해둔 것이어서 합목마다 거리가 다르다.

하지만 일본 규슈의 기리시마 연산과 소보산, 아소산에서 ▷사찰 ▷약수터 ▷매점 ▷쓰레기통 ▷화장실 ▷산소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쓰레기통과 산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안내책자에도 안 나올 정도였으니 아예 없다는 말이 맞다. 무엇보다 돈이 되는 것이면 휴대용 화장실까지 발명해내는 일본인들이 돈이 되는 좋은 목을 외면하기는 쉽잖았을 터. 산 정상과 주요 전망대에 매점이나 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도 자연보호 때문이라고 했다. 쓰레기통을 설치하면 쓰레기를 산에 버리고 오기 때문이고, 사찰과 산소가 없는 것은 종교문화와 장묘문화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약수가 없는 것은 화산 활동이 있는 곳일 경우 유해성분이 포함돼 있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산에 오르기 전, 특히 화산에 간다면 물통만 챙겨선 곤란하다. 산꼭대기에서 물을 파는 아줌마도 없다. 물이 나올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일본의 산에서 또 볼 수 없는 게 있다. 술 마시는 사람과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험준한 산길과 강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기에 자칫 산에서 술을 마셨다가는 실족하기 십상. 담배도 마찬가지. 산불을 내기 쉬운 매개체이기 때문이었다. 김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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