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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지대 사람들]시인'화가 민병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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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시인이자 화가인 민병도(56)씨는 서둘러 짐을 쌌다.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를 도시에서 맞을 수 없다." 그가 새로이 정착한 곳은 청도군 금천면 신지2리. 자신의 호를 붙여 '목언예원'이라 이름붙였다.

그로부터 10년. 그곳은 작은 낙원이 되어 있었다. 늦여름 볕에 모과가 익어가고 30년된 매화나무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다래 넝쿨이 돌담을 넘어가고 이제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씨앗을 쪼아먹기 위해 비둘기들이 아예 둥지를 틀고 들락거린다. 스스로를 유폐시킨 민병도 시인의 유배지다. 유배지 치고, 참 좋다.

"진정한 선비들은 유배지에서 철학과 예술이 완성됐어요. 남명 조식, 추사, 다산 모두 그랬죠. 그런 의미에서 '유폐'라고 표현해요."

그의 작업실에 들어간 순간 크게 변화된 화풍에 깜짝 놀랐다. 기운찬 산이 그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적 화풍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언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국의 산을 다니며 나무의 흐름, 봉우리의 방향까지 꿰뚫어 그리던 그가 이제 사실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단순화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단단한 남성적 골격을 숨긴 산의 속내를 드러낸다. 수십년간 '재현'에 몰두해온 화가의 비상(飛上)이다. 하나의 극치에 이르러서야 다른 길로 접어드는 집요함이 묻어난다.

그는 작품도 농사일처럼 한다. "농부들은 한해 열 마지기 농사짓자, 계획하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낙관찍는 작품 100작품, 시 50편, 이런 식으로 정해놓아요. 그러다 보면 명작은 아니라도 노작(勞作)은 나오죠."

천천히 가되 줄기차게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한다. 이틀에 한 작품꼴로 그려내니, 작업량도 무척 많다.

그동안 발표한 시집 12권, 개인전 18회. 시집 한권 내면 개인전 한번 하는 식이다.

시를 좀더 잘 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시를 쓰는 선비같은 그의 부지런함이 돋보인다.

청도읍이 고향인 그가 굳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스케치여행을 위해 전국을 다니다가 여기 적벽에 반했어요. 묵은 때를 물로 씻고 바위와는 대결하면서 말이죠."

그의 집 2층에 들어서면 1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1층은 평온한 시골집이지만 2층에 들어서면 곧 떨어질 듯 서있는 적벽이 서슬 퍼런 기개를 자랑한다.

일 년에 두 세번 그의 집은 이웃 주민들과 예술가들을 위한 무대로 변신한다. 돌을 놓아 돋워놓은 자연 속의 무대, 너른 잔디 위에서 시 낭송도 듣고 음악도 듣는다. 멋진 야외 무대는 시인, 화가,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는 이 집을 계기로 작은 미술관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벌써 모아둔 작품만도 400여점이나 된다. 몇 년 후 미술관 건물도 세울 계획이다.

그의 집엔 식초 익는 냄새가 난다. 인건비도 안되는 값에 농산물을 파는 농민들이 안타까웠던 그는 부가가치를 높여보고자 감, 매실로 직접 식초를 담갔다. 시제품을 만들어 성공하면 농민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 그의 집 마당에 커다란 전통옹기 400여개를 모아 놓은 이유다.

"전라도는 소쇄원, 식영정 등 작고 아담한 정원들이 참 많아요. 우리 지역에도 그런 곳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경치 좋은 곳. 예술도 있는. 목언 예원이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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