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아직도 배가 고프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4강에 올려 놓은 거스 히딩크 감독은 '언어의 마술사'였다.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한마디 말로 우리 선수들의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은 것은 물론 상대의 기를 꺾어 놓기도 했다.

히딩크 어록(語錄) 가운데 지금도 회자하는 것이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이다.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후 조별리그 통과란 1차 목표에 만족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이렇게 전달한 것이다. 목표를 달성한 선수들이 자칫 자만하거나 나태해질 것을 경계한 히딩크의 독려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4강 신화'란 꿈을 이뤘다.

7년 전에 히딩크가 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은 지금 이 시점에 대구경북이 가장 명심해야 할 말이다. 대구 신서가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했다는 작은 성과에 만족하거나 안주(安住)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20여 년 만의 경사에 들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히딩크의 말을 곱씹어야 할 것이다.

왜 의료단지 유치가 작은 성과인지부터 알아보자. 정부는 애초 의료단지를 만드는 데 5조6천억 원을 투입한다고 했다. 이 사업비는 1년이나 몇 년 사이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무려 30년에 걸쳐 연차적으로 투입되는 것이다. 5조6천억 원을 국가에서 몽땅 주는 것도 아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사업비는 2조 원에 불과할 뿐 나머지 3조6천억 원은 민간자본을 끌어오거나 지방에서 부담해야 한다. 이것저것 떼고 엄밀히 계산한다면 2조 원짜리 중앙정부 지원 사업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비 2조 원 모두 대구 신서에 오느냐. 이것도 아니올시다가 될 우려가 크다. 알다시피 대구 신서와 충북 오송이 의료단지로 같이 선정됐다. 일부에서는 대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선정된 만큼 2조 원 전액을 신서에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느 단지가 어떤 사업을 배정받느냐에 따라 2조 원이란 국비가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단지를 한 곳이 아닌 두 곳을 선정한 만큼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대구 신서에 지원되는 국비가 확 증액되기는 힘들 것이다.

의료단지 유치에 만족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 역시 분명하다. 최근 5년간 사업비가 많은 상위 5개 사업을 기준으로 할 경우 광주전남에서는 5개 대형 국책사업에 45조7천여억 원의 투자가 확정되었지만 대구경북은 8조3천여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료단지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대구경북은 14조 원 수준이다.

광주전남 경우 이른바 S-프로젝트라는 서남권종합발전사업은 24조6천억 원짜리이고 여수세계박람회는 9조5천억 원,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5조3천억 원이나 된다. 반면 대구경북은 2조8천억 원인 동서 6축 고속도로 건설, 2조6천억 원인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조9천억 원인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등이 고작이다. 누가 보더라도 초라하다. 대구경북(550만 명)과 광주전남(240만 명) 인구 차이를 감안하면 천양지차다. 이 모두가 지난 10여 년간 국책사업에서 대구경북이 홀대받은 결과다.

다른 지역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배가 아파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이유이든, 대구경북 단체장들 또는 공무원들의 역량이 부족했든지 간에 우리 지역이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지 못해 대한민국 발전에서 소외되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의료단지 유치는 지역 발전을 위한 물꼬를 튼 작은 성취일 뿐이다. 히딩크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대구경북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의료단지를 잘 만드는 것은 물론 동남권 신공항 조기 건설과 같은 대구경북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그 같은 일을 제대로 추진해 지역 발전이란 꿈을 이루려면 모두가 신발끈을 졸라매고 더 뛰어야 한다. 대구경북 단체장들이나 공무원들은 의료단지 유치를 자랑하는 데 열을 올리거나 안주하기보다는 히딩크처럼 지역이 더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16강 진출에 만족하지 않고 더 뛰어 4강 신화를 실현한 2002년 축구 국가대표처럼 대구경북 역시 '헝그리 정신'으로 더 뛰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발전이란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李大現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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