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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백두를 가다] 문경새재는 조선 9개 간서도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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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재는 문경새재 이전 지금의 서울과 영남 땅을 잇는 고개로 현재는 문경과 충주의 경계다. 문경 방면은 도로가 포장됐고, 충주 쪽은 옛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늘재는 문경새재 이전 지금의 서울과 영남 땅을 잇는 고개로 현재는 문경과 충주의 경계다. 문경 방면은 도로가 포장됐고, 충주 쪽은 옛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문경을 상징하는 가장 큰 고유명사는? 바로 백두대간과 영남대로이다.

우리는 문경을 백두대간과 영남대로의 중심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이다. 한반도의 등뼈이며 우리 땅의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비로소 삼천리 강산이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문경은 충주와 더불어 인후지지(咽喉之地)라 했다. 말 그대로 목구멍, 즉 들머리라는 뜻이다. 한강 유역으로 들어가자면 충주가 인후지지요, 낙동강 유역으로 들어가면 문경이 인후지지이다. 그 나눔의 원천이 백두대간이다. 문경의 백두대간은 저수령에서부터 청화산까지 도상거리가 110㎞(전체 1,400㎞)에 이른다. 또 조선 후기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전체 130여개 지명 중 문경 구간에만 10개가 등장한다. 그만큼 백두대간에서 문경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가 아닐까.

문경이 조선의 대동맥인 영남대로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데서 백두대간의 중심 의미를 더욱 확연케 한다. 조선은 개국 초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한양을 중심으로 한 도로망을 구축했다. 한양과 영남 땅(종착지는 동래)을 잇는 큰 길이 바로 영남대로다. 조선의 9개 간선도로 중 가장 대표적인 도로였다. 영남대로가 통과한 지역은 인구가 가장 조밀하고 산물이 풍부해 조선 경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또한 전국의 10대 도시 반 이상이 영남대로에 분포했고, 조선의 인재 역시 영남대로가 그 배출지였다. 영남대로는 '조선의 또 다른 백두대간'이었고, 그 중심이 바로 문경, 문경새재인 것이다. 문경새재는 예나 지금이나 한양과 영남을 잇고, 열어주고 있다.

문경새재가 조선의 한양과 영남의 열림길이었다면 문경새재가 개척되기 전 신라와 고려 때의 열림길도 갖고 있다. 바로 하늘재(계립령)이다.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문경과 충주의 경계다. 하늘재는 2세기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 개통된 고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로 알려져 있다.

신라는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군사도로로서 하늘재를 개통했다. 신라는 하늘재 방어에 국운을 걸었다. 6세기 중반 한강 유역에 진출한 신라는 드디어 하늘재를 중국으로 통하는 대내외 육상 교역로로 그 이름을 올렸다. 6세기 후반 고구려의 온달 장군은 "계립령과 죽령(소백산의 고개)의 서쪽이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늘재는 신라의 대표 고개였고, 조선으로 오면서 그 역할을 새재에 넘겨준 것이다. 문경은 하늘재와 문경새재에 이르는 1천8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소통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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