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대체로 극우주의자다. 국가·사회적인 문제와 맞닥뜨릴 때면 개인의 선택은 언제나 공동체의 이익을 지키는 쪽으로 쏠려왔다. 그 선택 과정에서 이성과 가치, 세계사적 흐름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문제에 대해서도 선악(善惡) 개념이 모호한 듯했다.
지난 7월 2주 동안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며 10여명을 인터뷰했다. 상당수는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했다.(물론 한국에도 살인은 잘못되었다는 둥 일본인들과 비슷한 논리를 전개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살인자'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이들을 만나면 숨이 탁 막혔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대한 반성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 일쑤였다. 안 의사 의거 100년을 맞았지만 한·일 간에 인식 차이가 이렇게 클 수 있는가 하고 절망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렇다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만남'을 통해 한일 간에 다리를 놓겠다는 의도가 아예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일본인의 속성을 제대로 모른 채 섣불리 덤벼든 게 아닌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기자의 선입견이 다소 바뀌게 됐다. 일본인 모두가 획일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만난 몇몇은 좀 달랐다. 제국주의 시대를 부끄럽게 여겼고 안 의사 의거를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단순하게 의견을 밝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공식 자리에서도 일본의 잘못을 설파하러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사회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는데도 사회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높은 지위를 갖고 있는 점에 다시 한번 놀랐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주류의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우리 분위기와는 다소 달랐다. 포용력이랄까, 아니면 일탈의 허용 정도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씬 관대했다.
어쨌든 이번에 소개하는 일본인 4명은 각자 입장과 상황이 조금씩 다른 분들이다. 전향적인 의견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여기에서 개인의 소신과 가치관은 논외의 대상이다.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보고 한일 간의 차이점과 동류의식을 찾아내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매년 안의사 추도법회 전국 각지에 순회 강연"…사이토 대림사 주지
일본 미야기(宮城)현 다이린지(大林寺)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센다이를 지나 구리코마 고겐(高原)역에서 내린 후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야 했다. 절은 얼핏 자그마하고 평범해 보였다. 그러나 입구에 들어서니 안중근 의사의 유묵비석이 턱 버티고 있었다. 국보 제569-23호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 위해 몸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이었다. 이 절이 보관하고 있다가 1980년 안 의사 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다.
주지 사이토 다이켄(肅藤泰彦·74)씨는 온화하고 건강한 인상이었다. 그는 유묵 기증 직후부터 매년 9월 첫째 일요일에 안 의사 추도법회를 열고 있다. 올해도 일본과 한국에서 온 200명이 참석했다. "내년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추도법회를 열 계획입니다. 일본과 한국에서 수많은 인사들이 참석해 안 의사의 의기를 기릴 것입니다."
그가 안 의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9년 아사히신문 기자로 있을 때였다. 집안 대대로 주지를 맡는 이곳 대림사 신도가 사형직전 안 의사에게 유묵을 건네받은 헌병 치바 도시치(千葉十七)였다. 치바 부부는 사망할 때까지 유묵을 절에 걸어놓고 안 의사를 기리는 향을 바쳤다. 당시 '안 의사 필적, 고국에 돌아간다'는 기사를 직접 쓰고 한국에 유묵을 전달한 것도 그였다. 1985년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두기 전에 쓴 책이 '내마음의 안중근'(집사재)이었다. 일본 헌병 치바가 6개월간 안 의사를 지켜보면서 우정과 존경을 느끼게 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이토가 국가의 원훈이라 애통한 사건은 맞지만 안 의사의 행동은 정정당당했어요. 백주대낮에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쏜 것은 결코 암살이 아니었고 독립운동의 일환이었지요."
그도 처음에는 안 의사를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여년이 지난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그는 전국 순회강연을 하며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안 의사 얘기를 들려주며 한일 간 우정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을 제대로 믿는 길이죠."
◆ "한일 근대사 큰 인물…공동연구 할때"…미즈노 교토대 교수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은 한일 관계에 있어서 최대 접점(接點)이라 할 수 있지요. 일본에서 이토 연구는 무척 활발하지만 한국에서 안 의사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아요."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59)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의 전공은 한국근대사다. '창씨개명-일본의 조선지배와 이름의 정치학'(산처럼 펴냄) 같은 저서로 한일관계사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양국의 연구 규모가 차이 나는 것은 두 사람의 생존기간과 기록물 때문"이라며 "이토는 공직을 거쳐 68세 때 죽은 반면, 안 의사는 31세 때 사망해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기자가 한국 일부 학자들은 이토 사살로 합방이 앞당겨졌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고 하자, 그는 "이토의 죽음은 합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예정대로 진행됐다"고 했다. 이토에 대해서는 일본 학자들 사이에 그의 정치 행적을 놓고 칭찬과 비판이 교차하지만 초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일본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도 그랬지만 현재도 한일 간 관계가 국제관계 속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이토와 안중근은 한일관계와 양국의 근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만큼 보다 심층적이고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한국 사람일수록 이토에 객관적"…호시노 아사히신문 기자
"작년 말 서울에서 행인들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차별적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았어요. 한국인들이 일본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호시노 마나부(星野學·43)씨는 아사히신문 오사카 본사 문화부에서 학술 파트를 담당하는 중견 기자다. 이토 히로부미에 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썼고 지난해 10월에는 한국에서 이토에 대한 인식 정도를 취재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즉답을 피했고 시종 완곡하고 모호한 어투로 설명했지만 진의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젊은 사람일수록 이토에 대해 객관적인 반응을 했어요. 식민지 시대의 한 페이지였을 뿐 일·한관계의 미래를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요."
그는 "이토에 대한 한국인들의 의식변화가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이토에 대한 공동연구를 해도 좋을 시점이 됐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가 과연 범인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란이 많다"며 "한국에서도 그 같은 문제제기를 하는 소설이 있고 사건의 진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토 묘소 방문객 1년에 300명 정도"… 모토다 야스코 이토 묘소 관리인
도쿄 외곽 시나가와구(品川區)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묘소 관리인은 마음씨 좋은 할머니였다. 불쑥 찾아갔는데 처음에는 거부하더니 취재진이 한국에서 왔다니까 선선히 대문을 열어줬다. 일본에서 약속 없이 방문하는 것은 큰 실례다.
할머니는 기다리라고 해놓고 1시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널찍한 묘소 주변의 낙엽 무더기를 쓸어담았다. 기자는 그냥 앉아있기도 그렇고, 도와주는 것도 이상해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청소를 말끔히 한 후 집에서 정장으로 갈아입고는 인터뷰에 응했다.
모토다 야스코(許田靖子·62)씨는 3대째 묘지 관리인을 하고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대를 이어 묘지를 돌보고 있다고 했다. 4대째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묘소관리 재단인 방장구락부(防長俱樂部)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문객은 1년에 300명 정도이고 많을 때는 1천명이에요. 아주 가끔씩 한국인 유학생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거의 없어요." 그녀는 "이토공 사망 100주년이 되는 10월 26일에는 이곳에서 큰 추모행사가 열린다"고 전해줬다. 그는 이토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한다고 하면서도 "살아있다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라며 "평민으로 태어나 어떻게 그렇게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갔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글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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