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울보다. 시집을 읽으면서 울고 그림책을 보면서 울고 소설을 읽으면서 울고 수필을 읽으면서 울고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면서도 운다.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그것은 얹힌 게 내려가듯 가슴에 맺혀 있던 억울함과 분노, 슬픔이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는 카타르시스의 절정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운다. 영국의 한 설문기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성은 일생 동안 평균적으로 1년4개월 동안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1만2천 시간이나 된다. 혹자는 '눈물은 신이 내린 묘약'이라고 했으나 사회는 우리에게 이 묘약을 쓰지 못하게 종용해왔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신의 감정 표현을 자제하도록 강요받아 왔으니 말이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마음이 건강해지고 마음에 울화가 쌓이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나의 나약함을 보이는 것이라고.
문학 치료 강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참여자들의 눈물샘을 가장 많이 자극했던 시가 있어 소개한다. 고 정채봉 작가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다.
특히 주부들이 이 시를 낭독하면서 많이 운다. 엄마와의 미해결 과제를 앙금처럼 안고 있거나,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가졌거나, 친정 엄마가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계신다거나 그 사연은 각양각색이지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데 따른 회한과 그리움의 눈물이리라.
낭독 후에는 서로 느낌을 나누고 엄마에게 편지 쓰는 시간을 가져 보게 하는데 참여자들은 그동안 감춰 뒀던 마음 한 자락을 꺼내면서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힌다. "엄마를 원망하며 보낸 시간이 후회되지만 살아 계셔서 다행이다.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화해를 해야겠다"라고 말하는 참여자를 보면서 필자는 문학의 힘을 새삼 확인한다. 시를 읽고 자기의 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상당한 치유가 이뤄지고, 이를 글로 표현해봄으로써 다시 한번 치유가 이뤄지는 셈이다.
확실히 문학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BC 1000년경 고대 그리스 도시 테베의 도서관 현판에는 '영혼의 치유 장소'(The Healing Place of the Soul)라고 적혀 있지 않았던가. 플라톤은 "신체와 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우선 정신부터 치료해야 한다. 치료는 어떤 매력적인 것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문자들이다"라고 했다.
최근 문학 치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구는 문학 치료의 출발지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대학교 대학원에 문학치료학과가 개설된 이후 이 분야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대구로 몰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문학 치료에 대한 문의 전화도 자주 걸려온다.
반면 "문학 치료가 뭐예요?"라는 질문도 받는다. 학문적인 정의로 문학 치료란 '문학, 참여자, 촉진자(문학 치료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읽기, 글쓰기)을 통해 문제를 치유하고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자기다움은 아름다움이라는 말과 맥이 닿는다.
'치료'라는 단어를 빼고서라도 문학은 '침묵의 상담사' 역할을 한다. 도대체 누구를 향하여 외칠 것인가! 나의 고통과 절망, 나의 외로움을. 입이 있는 사람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문학은 말없이 내 사연을 들어주고 어떠한 비난도 하지 않는 좋은 벗이며 동반자이다. 촉진자 없이도 어느 정도 자기 치유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생존의 각박함 때문에 고사 위기에 처해 있던 인문학이 부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문학 치료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이다. 심리상담의 한 분야로 본다면 사회과학이지만 문학을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는 인문학과도 가깝다. 그래서 인문학의 부활이 더욱 반갑다. 인문학의 부활과 함께 문학 치료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허로워지는 이 계절에 힘들고 고통스런 기억이 나를 괴롭힌다면 문학을 만나 보자.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좋다.
김은아 마음문학치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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