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술 못 마셔 죄송합니다

애주가의 입장에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거추장스런 존재입니다. 수작(酬酌)을 들어주지도 못하고 좌중 분위기를 그르치는 장본인이니까요. 나도 한때는 어떻게 하면 술을 잘 마실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 받은 압력과 갈등은 여간 크지 않았습니다.

술 못 마시는 것도 문제입니까?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고 묻습니다. 술보다는 테니스와 같은 운동의 가치를 더 높이 쳐주고 있습니다. 나는 애초부터 술과는 연을 끊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가슴 아픈 과거사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비주류(非酒流)에 대한 푸대접일랑은 접어주시기 바랍니다.

유년 시절이었던 1950,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농촌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이나 하실는지요. 양식이 모자라 밥을 지을 때 무나 고구마를 썰어 넣어 양을 불리던 시절입니다. 끼니를 거르는 가정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엉덩이가 패고 주름까지 드러나 보였습니다. 요즘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과 흡사합니다.

이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농촌에는 밀주가 성행하였습니다. 밥보다도 술을 더 즐겨 찾는 분도 있었습니다. 식사 후 반주로도 몇 잔, 새참으로도 몇 잔, 막걸리는 농민의 유일한 낙처럼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아버지는 과음을 하시거나 실수를 한 적은 없지만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밀주 단속을 위해 세무서 직원들이 종종 우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양조장과 결탁하여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용의주도하게 덮치므로 무위로 돌아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어머니가 만난을 무릅쓰고 아무리 은밀한 곳에 술 단지를 숨겨놔도 찾아내는 데는 귀신입니다. 촌로들의 지혜가 전문가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가 없습니다. 밀주를 적발한 후 마루에 걸터앉아 벌금을 매기는 그들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애써 지은 곡식으로 해 먹는 음식인데 왜 간섭까지 받느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식량을 절약하고 세수를 높이기 위한 국가 정책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거드름을 피우는 새파란 공무원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님을 바라보는 어린 심정은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양식을 축내고 벌금을 물며, 건강까지 해치는 술과는 평생 상종하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어쩌다 강권에 못 이겨 술을 입에 대어 보아도 맛은커녕 쓰기만 합니다. 오랜 습관이 굳어져 이젠 체질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데 어쩌겠습니까. 연말만 되면 비주류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집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부디 술 못 마시는 사람의 입장도 한 번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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