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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팔공산은 화두(話頭)다

대구의 진산, 중악 팔공산은 나에게 화두다. 화두는 의단(疑團)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의단이란 바로 다름 아닌 의심덩어리. 화두는 의단을 일으켜야 활구가 되는 법. 그러므로 불가의 선객들이 자기 한 생애를 불살라 가며, 면벽참선으로 화두를 틀어쥐고 성불을 향한 돈오(頓悟),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갈구하는 것 아닌가. 1천400년 전부터 대구라는 이름의 도시를 지켜온 산. 나는 언제나 팔공산을 바라보면 의단이 밀려온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의단의 하나하나는 이렇다. 몽고란에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는 팔공산 부인사의 초조대장경. 이 엄청난 문화유산이 100년 이상 봉안되었던 그 장경각(대장전)의 유허지는 어디인가. 여러 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유허지로 비정해 온 곳을 당국에서 단박에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면서도 2011년이 되면 초조대장경 밀레니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겠다는 숨은 뜻은 무엇일까.

또 다른 하나의 의심은 운해사(雲海寺)다. 재조대장경이 완성된 후,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이 '공산(公山) 운해사에서 선교의 대덕(大德) 100명을 모아 대장경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개최했다'는 군위 인각사 일연 선사 비문의 기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공산이란 이름은 전국에서 팔공산이 유일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비슬산(포산)에 있으면서 침략자에게 유린당하는 초조대장경의 모습을 비통하게 지켜봤으리라 짐작되는 일연 선사가 초조대장경의 인연처 가까운 곳에서 법석을 열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지금은 은해사 위 운부암(雲浮庵)과 그 옛날 홍수에 쓸려갔던 해안사라는 절이 있었던 해안평(海眼坪)만 휑하니 남아 있을 뿐, 그 인연의 고리만 알면 많은 것이 저절로 풀려진다.

나머지 하나, 부인사에 있던 원래의 선덕묘를 숭모전으로 그 이름까지 바꾸면서까지 선덕여왕을 100여년 동안 팔공산 기슭의 사찰에서 모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국내에서 유일한 선덕여왕 영정을 두고, 왜 굳이 불교사찰에서 모셔지며, 무엇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부처와 같은 공경을 받아온 것일까. 모든 걸 그렇게도 잘들 베끼면서, TV드라마가 그렇게 선풍을 일으켜도, 팔공산 자락이 품고 있는 이러한 사실들에는 도대체 공적(公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 한량없는 문화 콘텐츠의 보고(寶庫)를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더 마음이 저려온다. 그 누구도 시원하게 가르쳐줄 수 없다면, 우리 모이는 자리에서 서로를 스승 삼아 진지한 법거량(法擧量)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문득 팔공산에서 몰려오는 '의심덩어리'를 풀어버릴 때, 또 하나의 큰 이적(異蹟)을 이루게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김 정 학(천마아트센터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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