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알몸 투시기

1895년 미국 라이프 잡지에 희한한 삽화가 게재됐다. 가정부가 작은 기계를 벽에 갖다 대고 주인 부부의 은밀한 행위를 지켜보는 장면이었다. 열쇠 구멍을 통해 주인 안방을 훔쳐보는 삽화는 종종 있었지만 기계를 이용하는 것은 처음이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기계는 같은 해 빌헬름 뢴트겐이 발명한 X선이었다.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요즘 기술로는 벽이 두껍지 않을 경우 주인 부부의 뼈를 보는 것은 가능)이지만 X선이 모든 것을 투시(透視)할 수 있다는 세간의 소문을 반영한 풍자였다. 당시 X선이 옷을 뚫고 알몸을 맘대로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면서 정숙한 귀부인들은 바깥 나들이를 꺼렸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현대 기술로 그 삽화처럼 벽 뒤에서 훔쳐보기를 할 수 있을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X선은 건물의 콘크리트 벽을 투과하기 어렵지만 무선 송수신에 쓰는 라디오파를 쓰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파는 모든 것을 투과하지만 인간의 심장 근육을 둘러싼 지방층에 반사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형체는 뚜렷하지 않지만 건물 속 사람의 상태와 호흡은 감지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군사용'방재용으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고 하니 벽 뒤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제2의 '슈퍼맨'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투시기에 관해 미국 과학자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인체를 투시하는 장비를 개발하면 노벨상은 따 놓은 당상이다." 뢴트겐이 1901년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CT(컴퓨터단층촬영)를 개발한 앨런 코맥과 고드프리 하운스필드는 1979년 생리의학상을, MRI(자기공명영상법) 개발에 공헌한 폴 로터버와 피터 맨스필드가 2003년 생리의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즘 국내 공항에 설치되는 알몸 투시기를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다. 작년에는 인터넷에 등장한 중국산 투시 안경이 사기극으로 판명났고 삼성 탈레스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투시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해 연일 떠들썩하다. 이를 보면 인간은 투시 욕구에 목매고 있는지 모르겠다. 타인이 나 몰래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몸매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의 좋지 않은 본성이다. 과학자들은 인류 발전을 위해 투시기를 만들었지만 대중들은 엇나간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박병선 논설위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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