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동수의 야구 토크] 연승과 연패

프로야구는 팀당 133경기를 치르는 대장정이다. 7개월에 걸쳐 페넌트레이스가 열리는 만큼 각 팀들은 반드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오가게 된다. 팀들은 스프링 캠프에서 우승 전력을 갖췄다고 자랑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면, 예기치 않은 변수에 고개를 떨어뜨린다.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호재를 만나기도 한다. 최종 성적을 가늠하는 가장 큰 변수는 연승과 연패다. 모든 경기를 이길 수 없기에 팀들은 하나같이 '연패는 짧게, 연승은 길게'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스포츠에서 승리만 한 값진 선물이 있을까. 계속 이기는 팀, 계속 지는 팀은 이동하는 버스 내 분위기부터 다르다.

연승을 하면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실수는 묻히고, 잘한 것만 부각된다. 그러다 보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일단 입부터 간지럽다. 연승 팀의 버스는 마치 관광버스 같다. 괜히 말을 걸고 싶어지고, 누군가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빨리 다음 경기를 치르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버거운 상대도 깃털처럼 가볍게만 느껴진다. 이동하는 중에도 연방 전화기를 붙들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소한 일까지 꺼내 수다를 떤다. 무슨 일인들 용서받지 못할까.

하지만 한번 두번 지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버스 안은 적막강산이 된다. 가방을 내려놓다 작은 소리라도 나면, 쏘아 대는 눈빛이 매섭게 다가온다. 필자의 선수시절을 되돌려보면, 아찔했던 버스 안 경험을 잊지 못한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버스 안, 진동으로 휴대전화 모드를 바꾸는 걸 깜빡한 어느 후배는 신나는 벨소리를 멈추느라 얼굴이 백지장이 되기도 했다.

야구는 알다시피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라운드에 선 9명에겐 톱니바퀴처럼 주어진 각자의 역할이 있다. 한 곳에 구멍이 생겼을 때 잘되는 팀은 그 구멍이 바늘구멍이 되지만, 안 되는 팀에게는 둑을 무너뜨리는 치명적 요소가 돼버린다. 홈런을 치고 멋진 수비를 펼쳐도 팀이 패배하면 그 활약도 빛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연승과 연패 팀의 선수는 인터뷰 멘트도 달리한다. 연승 팀의 선수는 "올해 홈런왕에 도전하겠다"며 개인적 목표를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연패 팀의 선수는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이 우선"이라며 인터뷰를 짧게 하려 한다.

삼성 라이온즈는 시즌 초 연승의 단맛과 연패의 쓴맛을 고루 맛봤다. 이달 4일 한화 경기를 시작으로 10일까지 6연승을 내달릴 때만 해도 올해 상위권 성적은 떼어 놓은 당상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14일부터 18일까지 5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채워놓았던 곳간의 양식을 거덜 냈다.

연패 기간 삼성 선동열 감독은 "시즌 초반이고 벌어 놓은 게 있으니 괜찮다"며 호인의 기질을 발휘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건대 아마도 속이 시커멓게 탔을 것이다. 선수들을 다그친다고 이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 문학에서 SK에 3경기 모두를 내주며 5연패에 빠졌을 때 선수들은 예정된 '특별타격훈련'을 준비했지만, 선 감독은 채찍보다는 여유를 택했다. 선수들을 독려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선수들은 휴식을 반납하고 방망이를 잡고 연패 탈출의 투지를 불태웠다고 한다. 긴 레이스에서 경기를 하다 보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겼을 때 뒤를 돌아볼 줄 아는 혜안과 졌을 때 용기를 잃지 않는 투지다. 그것이 플레이를 보러온 관중들을 위한 선수와 팀의 사명이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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