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근대미술 산책] 이쾌대의 '무희의 휴식'

조선 복식의 아름다움, '향토색'으로 표현

작가 : 이쾌대 제목 : 무희의 휴식 재료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116.7×91㎝ 연도 : 1937년 10월 소장 : 개인(이한우) 소장?
작가 : 이쾌대 제목 : 무희의 휴식 재료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116.7×91㎝ 연도 : 1937년 10월 소장 : 개인(이한우) 소장?

일제강점기에 받아들이는 문화는 민족의 주체의식 앞에 가로놓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특히 미술에서 민족색에 대한 요청은 사실 일제나 조선이나 공히 주장했다. 다만 그 의도나 동기에 복잡한 이념적 교착이 깔려 있어 서로 그 뜻을 공감하기 힘들지만, 서양미술에 우리 민족의 고유성과 현실성을 반영하려는 의지는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쪽이나 계급적 관점을 견지한 쪽이나 마찬가지였고, 일제의 요구도 그랬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식으로 실천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소재나 주제의 선택에서 당시 널리 퍼져 있던 '향토적 소재주의'나 관념적인 '향토색'에 대한 추구를 반영하듯 이쾌대 역시 이 그림에서 민속적인 소재를 잡았다. 물론 뒤에 가서 동양화의 평면적인 채색법이나 선묘적인 특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감으로써 이를 방법적으로 극복하지만 우선 이 작품이 주는 표면상의 인상은 그렇다.

차례를 기다리는 무희를 막간에서 포착한 듯 모티프는 쪽진 머리에 족두리를 얹은 여인이 어두운 내실을 배경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다.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함초롬히 올려다보는 시선이 우연히 부딪힌 장면이지만 조용히 기다리는 표정에서 순간 미묘한 분위기가 스친다. 전통 복식이 주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통해 조선의 '향토색'을 전하려는 일차적인 의도를 넘어 특유의 정서가 함께 느껴진다. 색동 소매를 단 원삼과 분단장을 한 표정에서 마치 혼례복을 입은 있는 집 신부의 모습을 연상시켜 아취와 함께 애잔한 감정도 일으킨다.

이쾌대는 칠곡군 지천면 대지주의 아들이었다. 동경에서의 유학생활은 매우 검소했다 하나 일본과 다른 우리 전통생활의 기품 속에 배어든 높은 심미의식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모델은 결혼해 함께 간 부인을 앉혔는데, 이 작품을 위한 몇 점의 예비 스케치들로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라 '미인도'인 셈인데 현실의 인물을 설정해 이상화했기 때문이다. 의고풍의 배색과 공간의 깊이로 약간의 신비감이 감돈다. 정면시보다 사선 방향의 부감시를 선택한 것은 칠보족두리의 섬세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연두빛 비단적삼의 어깨와 목덜미 부분에 놓인 고상한 자수를 더 많이 드러내려는 의도에서다.

모델의 미모를 강조하기보다 의상과 장신구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더 초점을 맞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1920년대 초에 대구에서 양화가로서 활동한 바가 있는 그의 형 이여성이 30년대에 다시 현대적인 동양화에 관심을 가지고 사생의 필요성과 함께 채색을 강조하여 사실적인 생명력을 얻고 조선 사람의 생활과 정열에서 취재한 조선적인 회화를 창출할 것을 주장했는데 그 영향이 아닐까. 특히 그는 우리 민족의 생활사를 형상화하는데 진력해 뒤에 '조선복식고'를 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신윤복의 미인도가 있지만, 서양에서도 성장(盛裝)을 차려입은 멋진 부인들의 초상을 이상적인 미인으로 그려왔다. 특히 귀공녀들의 기품 있는 자태와 화려한 의상을 잘 표현한 반다이크는 물론이고 렘브란트는 온갖 장신구와 값비싼 의상을 구입해 입은 자신을 모델로 그리기까지 했다. 사랑하는 부인이 모델일 경우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상례지만, 인물의 개성이나 표정보다 여기서는 특히 채복에서 '조선 색'의 미를 찾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린 이듬해 4월 재동경미술학생협회전에 낸 습작 두 점을 두고 김복진은 "색채의 운율이 세련돼 있다"는 평을 했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