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통증 사냥꾼

해마다 5월이면 보건복지부는 전국 호스피스기관과 함께 '통증을 말합시다' 캠페인 행사를 한다. 암환자, 의사, 간호사 대표가 모여서 '통증을 말합시다'라고 선언식도 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명운동도 한다. 대구경북지역에서도 14일 국채보상공원에서 통증 알리기 캠페인을 했다. 통증은 말기암환자 삶의 질에 가장 중요한 증상조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매년 캠페인을 해야 할 정도로 통증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일까?

암성통증은 95% 이상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말기 암환자들은 여전히 통증을 느끼며 살아간다. 통증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휴식과 수면을 방해한다. 결국 통증은 인생의 즐거움을 모두 앗아가 버린다. 하루 종일 통증이 장악한 삶을 살면서도 '아프다'고 말하기를 주저하는 미자(가명)씨는 50대 유방암 환자다. 그녀는 먹는 마약성 진통제와 피부에 붙이는 마약성진통제도 사용하지만 돌발성 통증이 하루에 3차례 이상 있었다. 새벽에 통증이 있으면 처방해놓은 모르핀 3㎎을 주사 맞기보다는, 그녀가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했다. 마음 넉넉하신 목사님은 새벽 3시에 평온관에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지만, 그녀의 육체적 통증을 해결하는 것은 모르핀이 정답이다. 통증이 병의 진행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마약성 진통제가 마약중독자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교육을 수차례 했지만, 그녀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환자에게 특별한 증상이 없는 질병,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고지혈증을 가진 환자에게 약을 복용하도록 할 때, 의사는 환자를 설득하는 데는 당연히 어려움을 가진다. 하지만 심각한 통증을 가진 환자들조차 통증을 말하지 않고,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데 거부하는 것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궁암으로 투병 중인 정옥순(가명)씨는 "우리는 통증이 오면 죽음이 다가왔다고 느끼기 때문에 통증을 말하지 않아요. 통증을 참으면 더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있는데까지는 참는답니다"라고 했다.

그녀에게서 통증을 말하는 것과 마약성진통제를 늘리는 것은 '죽음이 다가왔다'는 신호였다. 그녀는 진통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기 암환자에게 패치나 먹는 진통제 (마약성 진통제)의 용량을 늘려서 처방하면,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표를 선물하는 것으로 환자와 환자보호자는 오해를 한다.

호스피스팀이 환자에게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해 드리고 나면, 그제서야 통증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통증을 말합시다'의 핵심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 일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평온관에서 말하지 않는 고통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통증 사냥꾼이 되어가고 있다.

김여환<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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