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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다시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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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포함한 문학이나 여타 예술은, 별의별 거룩함의 너울을 거기 씌우려는 이해 당사자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따지고 보면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은 맞다. "그러나 시는 보잘것없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액세서리이기 때문에, 시 없는 삶은, 그것도 삶은 삶이겠으나, 정신의 윤기를 잃은 삶일 것이다"라고 이어지는 항변 또한 틀리지 않다.

'시'(Poetry, 2010)는 완성된 작품으로서 시(poem)의 아름다움을 마냥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문학 형식으로서 시(poetry)적인 아름다움을 쫓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이다. 이를 깔끔하게 완결된 영상으로 담아내기보다 아름다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묻고는, 어디 한 번 제각각의 방식으로 답을 해보란다.

보는 이들의 생각거리를 남겨둔다는 배려가 얼핏 성가시도록 불편하기도 하지만, 곰곰이 되씹어보노라면 때로는 쏠쏠한 재미로, 당최 정신 못 차리도록 빠르게 혹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청량감마저 느껴볼 수 있다.

주인공인 미자는 이혼한 딸이 맡기고 간 철부지 외손자와 단둘이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할머니이다. 반신불수 노인네를 간병하며 받는 돈을 주된 수입원으로 근근이 버텨가고 있는 고달픈 삶이자, 아직도 레이스 달린 옷과 화사한 모자를 고집하는 철딱서니 없는 공주님이기도 하다. 점차 지상의 언어들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치매 판정을 받던 날, 평소 꿈꾸어 오던 천상의 언어들과 만날 수 있는 시인의 문이 열린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상을 준비하는 순간, 여중생 집단성폭행에 가담했던 외손자에게 발목 잡혀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지경에 이른다. 너무나 익숙하게 철이 든 가해자 부모들의 대책 모임과 아직도 서투르게나마 꿈을 꾸고 있는 시낭송 모임 사이에서. 스스로가 무엇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손자 앞에서 분노하다가, 정작 딸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분노 앞에서 다시 꿈 같은 꽃노래나 늘어놓다가. 바람의 흔적이나 꽃그늘의 아름다움을 또박또박 적어가던 그 메모장이 졸지에 음흉한 꽃뱀의 추악한 공갈장으로 바뀌는 사이에서,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대끼면서 기어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그 한 달간의 여정을, 그 흔한 양념인 배경음악 한 자락 깔지 않고서 덤덤하도록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윽고 주인공이 하늘로 솟구쳐 사라졌는지, 아예 물길 속으로 잦아들었는지도 보여주지 않고서 말이다. 여전히 든든하도록 의뭉스러운 이창동이라는 사내와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윤정희라는 여인의 설레는 만남을 확인하고 나오는 길, 머릿속은 온통 불편하였지만 가슴은 한결 흐뭇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시낭송 모임에서 만난 후줄근한 형사가, 스스로에 시비조로 읊조리던 구절이다. 다시 나에게도 물어본다, 스스로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순간이 있었냐고.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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