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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낙동강시대 스토리가 흐르는 마을] 조선조 왜관 10곳 설치…칠곡만 지명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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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면서 회유책으로 삼포를 개설하고, 왜(倭)의 조선 왕래와 무역을 허용했다. 왜와의 무역을 허용하면서 주 교통로인 낙동강변에 교역, 접대, 숙박이 가능하도록 설치한 것이 바로 왜관(倭館)이다. 조선조 교린정책의 하나였다. 왜관은 낙동강 수운을 이용한 교역의 주요 고리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산지'(京山誌) 등에 따르면 남해안 포구와 서울에 설치한 왜관이 5곳, 낙동강 중로(中路)에 왜인들이 잠시 머물거나 숙박과 통상을 할 수 있는 작은 공관, 즉 소왜관(小倭館)이 칠곡 약목면 관호2리와 왜관면 금산2리를 포함해 5곳 등 모두 10곳의 왜관이 설치됐다는 것.

칠곡군 약목면 관호2리에는 조선 초기인 1417년(태종 17년)에 왜관이 설치됐다. 왜관이 설치된 곳은 칠곡을 비롯해 부산, 서울, 경남 김해'창원'칠원 등지가 꼽히고 있다. 왜관에서 교역을 위한 장을 열 때는 관헌의 감시를 받았고, 그 주체도 정주하는 왜인에 한정했다.

왜관은 청일무역이 성행하면서 점차 쇠퇴해 고종 초기에 폐쇄됐다. 왜관이란 지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곳은 칠곡뿐이다.

김병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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