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과 눈 덮인 흰 산, 차가운 바위들과 성긴 나뭇가지들의 빈 숲, 황량한 겨울 골짜기를 간결하고 담백한 수묵 담채로 표현한 이 소폭 그림은 청정 이여성이 그린 사계 산수 가운데 겨울 장면이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수학했고 3·1운동 직후 대구서 3년간 옥고도 치른 지사인데 1923년 동아일보는 대구노동공제회관에서 열린 미술전람회에 그가 서양화부에 '유우'(悠牛) 외 16점을 냈다는 보도를 했다. 서화가 중심이었을 이 전시회에 양화 출품자로는 그와 이상정 그리고 황윤수와 박명조 정도였던 것을 보면 그를 대구서양화단의 선구자라고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현재 전하는 작품은 없지만 뒤에 그린 역사화적인 풍속화인 격구도와 같은 작품들로 미루어 볼 때 수채물감을 재료로 서양화적인 시각과 방식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화력만을 본다면 그는 청전 이상범과 매우 가깝게 교유하며 함께 2인전까지 초대받았던 동양화가이다. 조선미전보다는 서화 협회전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이론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동생인 이쾌대가 조선화의 전통을 현대화에 접목시키는데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으로 큰 역할을 했다. 학술 분야뿐 아니라 워낙 다양한 활동과 업적으로 인해 화가로 국한시키기 어려운 인물이다.
이 그림 역시 전통 산수화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신선한 새로운 감각이 느껴진다. 전체적인 인상에서나 필치에서 청전의 분위기와 닮은 데가 있어 보이지만 당시 늘 같은 소재를 반복한다는 지적과 함께 침울하고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던 청전과는 다른 빛을 발산한다.
잎이 다 진 나무들이 듬성듬성 군락을 이룬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산 아래 중턱에 이르면 산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사찰 같지 않게 담이 둘러 있고 문 뒤로 솟은 누각이 보이는데 피안의 세계처럼 고적하다. 근경의 바위들과 초목들을 그린 아취 있는 필치와 엷은 담채로 양감을 부여한 데서 완연하게 현대적인 감각을 추구하려는 모습이 느껴진다. 멀리 산세의 오름세도 완만하게 둔덕을 이루고 있어 비록 상상의 풍경이지만 관념적인 전통 산수화의 화경과는 다른 우리 산야의 실경을 떠올리게 한다.
갑술(1934년) 맹춘에 청정거사가 지었다고 쓰고 백문과 주문방인으로 관인을 했는데 동생 이쾌대의 결혼 선물이었다고 전한다. 춘하추동 사계의 변화를 방안에 두고 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옛사람들의 고상한 취미와 이여성의 다재다능함과 그들 형제간의 우의를 함께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영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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