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병을 알자] 치매…내머리 속 지우개,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리 써라

PET(양전자단층촬영)으로 뇌를 찍어보면 치매 환자의 뇌 대사량이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PET(양전자단층촬영)으로 뇌를 찍어보면 치매 환자의 뇌 대사량이 훨씬 적음을 알 수 있다.
치매는 확실한 예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인자들을 미리 조절하면 예방과 함께 치료도 가능한 질환이다.
치매는 확실한 예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인자들을 미리 조절하면 예방과 함께 치료도 가능한 질환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고령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11%로 나타났고 2026년에는 20.8%로 약 1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인 치매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9년 전국 치매 유병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 비율(치매 유병률)이 8.6%로 4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7년이 되면 치매 노인은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자주 가던 딸집조차 기억 못해

김정임(가명'67) 씨는 남편, 아들과 함께 병원을 찾아왔다. 2, 3년 전부터 물건 둔 곳을 잊어버리고 말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는 증상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나이가 들면서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여겼지만 최근에는 약속을 해놓고도 잊어버려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올해 들어 냄비를 태우는 횟수가 잦아져 제대로 된 냄비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삿날이나 아들 생일을 곧잘 챙겼는데 올해부터는 그냥 지나쳐버렸다. 지난해 가끔씩 다니던 서울 딸집에 가다가 길을 못찾아 고생을 한 뒤부터는 혼자서 멀리 가지 않으려고 한다. 친구 아파트 동호수는 여러 번 들어도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통장 비밀번호도 잊어버리고 통장 관리도 잘 안돼 올해부터는 남편이 집안 돈 관리를 맡고 있다.

최우철(가명'70) 씨는 1, 2년 전부터 기억력 저하가 심해진다는 것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이전보다 자주 생겨서 철저히 메모를 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신문을 읽어도 모임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면 알지만 정작 자기가 이야기하려면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아 주로 듣는 편이다. 흔히 쓰는 안경이나 휴대전화도 어디 있는지 몰라 자주 찾는 경우가 있지만 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 평소에 다니는 친목 모임에는 별 무리 없이 참석하고 있으며, 집안 세금이나 돈 관리는 잘 하고 있다. 함께 병원에 온 부인과 딸은 기억력이 떨어졌지만 일상에는 별 문제가 없고,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김정임 씨는 알츠하이머병의 전형적인 초기 증상이다. 신경심리검사에서 기억력, 지남력(자신이 놓인 상황을 시간적'공간적으로 바르게 파악해 관련된 주위 사람이나 대상을 똑똑히 인지하는 능력), 판단력, 집중력에서 기능저하가 확인됐다. 뇌 MRI에서 측두엽 및 해마가 위축된 것이 확인됐다. 기억력 저하를 일으킬 만한 다른 내과적 질환은 없었다.

최우철 씨는 스스로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지만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 않아 치매는 아니었다. 신경심리검사에서 기억력에서 그 나이대 정상 노인의 평균보다 현저히 떨어져 있어 '경도인지장애'로 확인됐다.

최 씨의 경우처럼 주관적인 기억력 저하가 있고 신경인지검사에서 기능저하는 확인되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경우를 경도인지장애라고 부른다. 정상 노화과정에서 관찰되는 인지기능의 저하와 가벼운 치매 사이의 중간 단계다.

정상 노인은 매년 1~2%가 치매로 발병하는데 비해 경도인지장애 노인은 매년 10~15%가 치매로 발병한다. 그만큼 치매 고위험군에 속하는 셈이다. 경도인지장애로 판단되면 정기적으로 검사받아서 가능한 조기에 치매를 진단해야 한다.

◆완치 가능한 치매도 10% 이상

치매는 뇌에 손상을 초래할 수 있는 수많은 질환(표 참조)들이 치매를 유발시킬 수 있다. 아직 국내에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완치가능한 가역성 치매는 전체 치매의 약 10%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도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전국치매역학조사의 결과를 보면 치매환자의 약 71%가 알츠하이머병, 24%가 혈관성 치매로 알려져 있다.

진단은 의사의 면담과 검사를 통해 환자가 치매 상태인지 판단하고, 치매 상태를 유발시킨 원인 질환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전문의가 철저한 병력 청취와 신경학적 검사 및 정신상태검사, 신경심리검사, 혈액 및 뇨검사, 심전도 검사, 뇌 MRI(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단층촬영) 검사 등을 포괄적으로 시행한 뒤 결과를 종합 분석해서 최종적으로 치매 여부를 판단한다.

치매 환자의 약 10~15%는 발생 위험인자에 대한 예방을 하거나 정확한 진단 후 적절히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원인이 되는 질환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치매가 단순한 노환의 한 종류가 아니라 뇌 질환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즉 예방과 치유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뜻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불안증 조절해야

조금씩 악화되는 퇴행성 치매도 치료를 통해 진행을 늦출 수 있다. 기존에는 약물 치료가 주로 이뤄졌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작업요법, 인지재활, 정신요법, 환경조절 등 다양한 형태의 비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치료뿐 아니라 치매 환자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호자들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최상의 치료는 예방이다. 아직 예방접종처럼 확실한 예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치매의 발병 위험성을 높일 수 있는 인자들을 미리 조절해 치매에 걸릴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노년기에 흔한 대사성 또는 혈관성 질환들은 조절이 가능한 치매의 위험인자에 속한다. 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정재 교수는 "비록 스트레스가 치매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 탓에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 해마 부위의 손상이 초래된다는 연구도 있다"며 "노년기에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불안증을 조절해주는 것이 치매의 예방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움말=경북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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