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탄생 100주년 有感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나도 가만 눈을 감네.'

대구 앞산공원엔 우리 지역이 낳은 한국의 대표 시조시인으로 현대 시조 분야의 개척자인 이호우(李鎬雨)를 기리는 시비가 있다. 1912년 태어나 1970년 대구에서 귀가하다 쓰러져 생을 마감한 그를 추모해 지역 문인이 1972년 세웠다. 그의 대표 시조로 널리 알려진 '개화'(開花)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달 서울에선 그를 비롯해 탄생 100주년의 문인 6명을 되돌아보는 '2012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가 열렸다. 한국작가회의, 대산문화재단 마련 행사였다.

그는 국민 누구에게나 쉬운 현대 시조를 개척, 서구 자유시에 밀려 빛을 잃던 우리 시조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선구자다. 서울 100주년 기념문학제도 그의 이런 큰 공로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그가 나고 자란 경북 청도나 활발한 언론 및 작품 활동을 펼친 대구에선 조용했다. 물론 청도엔 그를 기린 이호우시조문학상이 있고 1992년 첫 시상식 이후 매년 기념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흔적을 찾다 보면 아쉬움이 한두 가지 아니다. 먼저 앞산 시비 위치 찾는 것부터 어렵다. 공원관리사무소 이정표를 믿다간 낭패다. 헤매기 일쑤다. 사무소 직원은 위치는 물론 시비 존재도 잘 모른다. 시비 문구 오류도 있다. 마지막 구절 '나도 가만 눈을 감네'라고 새겨져 있지만 시집엔 '나도 아려 눈을 감네'이다. 1962년 첫 작품 발표 땐 '가만'이었으나 1968년 '휴화산'이란 시집에선 '아려'로 고쳤음에도 옛 표현을 새긴 듯하다.

청도 생가 찾기는 더 힘들다. 청도읍에서 밀양 가는 국도 따라 유호리 옛 집까지 제대로 된 생가 이정표가 없다. 겨우 찾아 집 앞에 이르면 그의 생가가 2006년 문화재청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한 문화재임을 알게 된다. 잠긴 대문 앞 안내판, 담 너머 정원에 1997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오누이 생가' 표석을 보면 여동생 이영도와 함께 태어나고 자란 곳임을 확신하게 된다. 유천 냇가 오누이공원 찾기도 쉽잖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시조의 큰 산맥으로 '우리의 국보 감은사탑 가운데 하나 같은 분'(조병화 시인)이란 평가를 받지만 정작, 고향은 그를 잊고 있었다. 100주년이 되레 쓸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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