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정부조직은 국회가 정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11일 첫 국무회의를 열면서 국방부 장관 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회의에 이들을 부르지 않고 차관 등을 대리로 출석하게 하였다. 이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무엇보다도 대통령'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의 이견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전임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과는 함께 국사를 논할 수 없다면서 국무회의 규정까지 어겨가며 회의를 열지 않고 버티다가, 더 이상 국무회의를 태업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택한 탈법적인 궁여지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틀 뒤 대낮에 이루어진 차관급 인사의 기자회견은 더 가관이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교육부를 비롯하여 외교부 안전행정부 농림축산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의 차관 10명과 국무조정실의 차장 2명을 포함해 모두 20명의 차관급 인사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들 12명의 차관'차장 자리는 3월 13일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청와대 홈페이지의 청와대 뉴스는 이날부터 교육부 차관 등 20명의 명단을 버젓이 내걸고 있다. 방송과 신문에서도 교육부 차관 등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통령실에서 받은 보도자료를 이들이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앵무새처럼 국민들에게 그대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변인도 그때 이들 12명의 차관'차장이 실재하지 않는 유령 자리인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대변인 브리핑은 이들은 '아직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현행법에 따라 임명하고 차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 재발령할 예정'이라고 마지막 부분에서 사족을 달았다. 인사 명단과 브리핑에서 겉으로는 교육부 차관 등으로 쓰고 부르지만 현행 정부조직법에는 교육부 등이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은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등으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헌법이 1948년부터 줄곧 행정 각부의 조직과 직무를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에 없는 행정 각부의 차관 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전에 처리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최근 정치권의 쟁점이었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올해 1월 30일 대통령 당선인의 뜻을 받들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발의한 것이다. 이때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찬성자로 법안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이 정부조직에 관해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번 개정안은 2008년에 전부 개정한 정부조직법을 또다시 크게 바꾸자는 것인데, 이한구 발의자는 물론이고 이들 찬성자 중의 많은 의원들이 2008년 개정안에도 찬성자였다. 이들은 권력의 자력에 이끌려 이처럼 5년마다 자기부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의 전선에서 신설하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직무를 둘러싸고 이어지던 공방이 어제 마침내 그쳤다. 종합유선방송의 관할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자는 대통령'새누리당의 제안을 민주당이 받아들이고, 새누리당이 국회에 방송의 공정성을 다룰 특별위원회의 설치 등을 민주당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새누리당은 그동안 정보통신기술산업의 육성을 위해 이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방송의 관할은 구성이 중립적이며 직무도 정부로부터 거의 독립해 있는 위원회에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국회의원은 정부조직을 제안할 수는 있지만 이를 정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65년 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확인한 것으로서, 국민 모두가 가장 기초적이며 최고의 규범으로 따라야 할 헌법에서 정한 규정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생각대로 처리되지 않자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거나 '이것은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국민들이 확정한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우리는 대통령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악법이든 선법이든 헌법과 법률의 규정이 그대로 지켜지길 바란다. 정부조직에 관해서는 국회의 결정에 따르는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번에 상당한 정치'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다시 한 번 학습했다. 지난 2월 25일 헌법을 준수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굳이 다시 떠올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강재호/부산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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