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카드특별자치도' 제주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 느지막이 가족들과 짧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며칠 전 제주여행을 예약했다. 여행지로 제주도를 선택한 이유는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일곱 살 딸의 성화 때문이었다.

그동안 잘 놀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제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사실 여행의 즐거움은 준비하면서 시작된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얻는 설렘은 여행만이 가져다주는 특권이다. 하지만 이번 제주여행은 준비단계부터 기분이 찜찜했다. 에어카텔(항공'숙소'렌터카 패키지 상품)을 예약하자 업체에서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카드결제를 하겠다고 하자 업체는 예약 취소에 따른 수수료 부과가 어렵다는 이유로 현금결제를 고집했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이 어디에 있느냐"며 항의를 하자 업체는 한발 물러서 비용의 절반은 현금결제를 하고 나머지는 카드결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비용의 절반을 송금해주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카드결제의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딸과 함께 가 볼 만한 관광지의 할인쿠폰을 구매했다. 이번에도 관련 업체에서 현금결제를 요구했다. 카드결제는 되지 않기 때문에 쿠폰을 수령하면서 현금결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모처럼 가는 가족여행을 망치기 싫어 현금결제를 하겠다고 말했지만 기분은 개운하지 않았다.

카드결제를 둘러싼 제주여행의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카드결제를 거부당했다는 불만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카드 사용이 일상화됐지만 제주도에서는 카드결제를 거부하는 일이 많아 제주 관광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을 정도다.

제주도는 1991년 제정된 제주도개발특별법(이후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명칭 변경)에 의해 보호받는 곳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제주여행을 갈 요량이면 차라리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만큼 제주도가 인심을 잃었다는 뜻이다.

최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발표된 세법 개정안을 두고 여론이 좋지 않다. 유리지갑으로 대변되는 월급쟁이의 세금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징수 편의를 위해 세원이 노출되는 월급쟁이를 또다시 봉으로 삼았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수정된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시선이 곱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달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증세에 앞서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한 복지재원 마련이 우선이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세금 누수를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카드 사용을 권장해 왔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카드결제가 공공연하게 거부당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카드 사용의 예외 지역이 되는 카드특별자치도가 되는 순간 제주의 이미지 추락뿐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정부의 목표도 요원해진다.

신용거래가 활성화되면서 현금을 다발로 싸 들고 여행을 하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제주여행을 가려면 상당한 현금을 들고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제주도가 카드 한 장 달랑 들고 가더라도 불편 없이 즐거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관광 1번지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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