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37.5도 대구 아파트 건설 현장…외국인 노동자 '그늘 없는 노동'

현장 휴게 공간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은 접근 어려워
폭염 대책 안 지켜지는 현장 수두룩… "안전교육 기회도 제한적" 주장
현장 점검과 외국인 대상 안전교육 실효성 요구

9일 오후 대구 중구 한 건설현장에서 작업자가 냉수를 끼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9일 오후 대구 중구 한 건설현장에서 작업자가 냉수를 끼얹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역대급 폭염에 연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지만, 여전히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땡볕 아래서 치명적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에겐 작업환경이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그늘이 곧 생명'이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공사장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땡볕 아래 쉴 곳 없는 건설 현장

9일 대구 중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았다. 오전 11시부터 뜨거운 햇살이 쏟아졌다. 기상청이 발표한 기온은 35℃였지만, 현장 온도계는 37.5도를 가리켰다.

공사장 앞 그늘진 골목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간이의자 두 개와 바닥을 뒹구는 담배꽁초, 일회용 컵들이 이곳이 그들의 '단골 쉼터'임을 보여줬다.

이곳 현장에는 냉방이 가능한 휴게공간이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소속된 목수팀은 이용하기 어렵다. 철골팀과 형틀팀이 각각 두 곳의 휴게소를 나눠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게소 안에는 에어컨이 갖춰져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는 골목의 체감 온도는 뙤약볕과 다를 바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1시쯤. 가장 햇볕이 강한 시간임에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얇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선풍기가 달린 조끼를 입은 채 일에 매달렸다. 작업복 곳곳은 땀으로 젖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틈이 날 때마다 공사장 구석 그늘막에 들어가 잠시 쉬는 것이 전부였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대구경북지부(대경지부)는 이곳 현장이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따라 식수와 소금, 휴식을 제공해야 하지만, 현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심재선 건설노조 대경지부 노동안전부장은 "기온이 41도에 달하는데도 나무 그늘 하나가 전부인 현장이 아직도 있다"며 "노동 현장 점검 시 보여주기식으로 컨테이너를 갖다 놓는 곳도 있다. 더 많은 희생자가 생기기 전에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열질환 예방 위해 철저한 현장 단속 필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8∼2023년) 온열질환으로 산업재해가 최종 승인된 근로자는 모두 18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3명(51.7%)이 건설 현장에서 나왔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알거나 요구할 기회조차 없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공병열 건설노조 대경지부 총괄사업단장은 "최근 20대 외국인 노동자가 사망한 구미 현장은 안전교육을 받지 않아 시정 명령을 받은 곳"이라며 "의사소통이 어려운 젊은 외국인 노동자는 자기 몸을 지킬 방법조차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경지부는 대구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온열질환 예방대책이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 철저히 감독하라"고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노동자의 생명보다 건설사의 이윤만 중시하는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전교육 실태도 철저히 점검하라"고 외쳤다.

앞서 7일에는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20대 노동자 A씨가 쓰러져 숨졌다. 현장에서 119구급대가 측정한 체온은 40.2도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고용노동부는 한동안 중단했던 '기온 33도 이상 시 2시간 내 20분 휴식 의무화' 지침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대구를 포함한 전국 노동청과 안전보건공단은 폭염 대응을 위한 현장 점검에 나설 예정이다.

9일 오후 대구 중구 한 건설현장 작업들이 휴식쉼터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9일 오후 대구 중구 한 건설현장 작업들이 휴식쉼터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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