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당시 로마가 세계 최강국이었기 때문에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중심인 로마에 있고 이들이 서로 지역을 달리하여 쉽게 통한다는 의미이다. 사실 로마의 길은 원래 군사적이고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제국 로마를 통치하는 방법은 법과 군사력에 의한 엄격한 규율이었다. 따라서 제국의 이해와 권위에 반하는 경우 신속하게 군사를 이동시켜 이를 굴복시키는 것은 석재로 잘 포장된 도로였기에 가능했다. 이 길이 결국 상업을 위한 길이 되고 사람들이 많이 소통되자 자연스럽게 로마식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도 폼페이에는 당시의 길이 잘 남아 있다. 밑에는 조그마한 돌로 다지고 그 위에 납작한 돌을 깔았고 옆에는 하수구도 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다.
흔히 비단길이라고 부르는 실크로드는 고대에 비단 무역을 계기로 하여 중국과 서역 각국을 이어준 육해교통로를 말한다. 총 길이 6천400㎞에 이르는 이 길은 중국 중원지방에서 시작하여 하서회랑을 가로질러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변을 따라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초원, 이란고원을 지나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른다. 말이 실크로드이지 목숨을 건 머나먼 행로였다. 이 길은 처음에는 전쟁을 위한 길이고 문물을 거래하는 길이며 종교적으로는 포교의 길이 되었다. 실크로드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한나라(기원전 206~기원후 25) 때이다. 한무제는 서아시아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장건을 중앙아시아에 파견했는데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 및 지중해의 동편에 이르는 서방 각지와 문물이 왕래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가 번성하였던 중세 이래 유럽인들은 크고 작은 많은 순례지를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성지순례는 살아있을 때나 죽고 나서 속죄를 위한 중요 수단이 되었다. 본인이 신체적으로 불편하면 대리인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디로 순례를 다녀왔는가에 따라 등급이 매겨졌는데 예루살렘이 최고의 등급이고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그다음 등급이었다. 특히 북부 유럽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순례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였고 1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페인 북부의 모든 길은 이곳으로 이어졌다. 순례자들은 성 야고보의 유해가 있다는 대성당을 찾았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750㎞에 달하는 여정을 도보 순례를 하고 있다. 장대한 산악지대와 고풍스러운 마을들, 숲으로 뒤덮인 길을 걸어 성지에 도달하는 영적 희열은 대단하다.
우리에겐 어떤 길이 있었을까? 경주는 문화엑스포의 일환으로 경주와 이스탄불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있다. 중국 서안에서 출발하는 실크로드가 아닌 경주에서 시작점을 잇는 실크로드이다. 일본에서는 해양 실크로드라 하여 역시 일본까지 잇고 있다. 8세기의 신라 승려 혜초는 요즘의 인도인 천축을 다녀와서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기행문을 썼다. 파미르고원을 넘고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40여 개국을 돌아보고 기록한 것이다. 경주에는 서역인의 모습을 한 석상이 있고 신라시대에는 서역의 물건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하였다.
고대에는 육지에 가까운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중국에서 우리나라까지 약 2주 정도 걸렸다 한다.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조류와 풍향에 따라 2, 3일 이내에 도달하기도 하였다. 신안 해저에서 발견된 배에 수많은 송대 도자기가 실려 있어서 많은 상선이 드나들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길은 여기저기 생기기 마련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서 왜군이 부산에 다다른 20여 일 만에 한성이 함락되었다. 조선시대 각지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서울로 가는 선비는 얼마나 걸렸을까? 걸어서 열심히 가노라면 약 2주면 족하지 않았을까? 목포와 신의주를 연결하는 국도 1번 길은 이제 추억의 길이 되었다.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설되었으니 그 역할을 내준 셈이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지나고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여행을 하고 싶다. 언젠가는 통할 길이다.
막힘은 단절이요 이어져 뚫림은 소통인데 어찌 모두 닫고 살려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홀로 있지 않고 남과 연계 속에서 소통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가치가 서로 이어져야 더 높은 가치를 낳는 것이다.
천득염/전남대 교수·건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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