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은 육체의 건강 못잖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음에 생긴 병을 숨기려고만 합니다. 감기에 걸리거나 암이 생긴 것이 자기 탓만이 아니듯이 정신질환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극적으로 알려서 도움을 청하고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 매일신문은 대구지역 9개 정신건강증신센터와 함께 앞으로 10차례에 걸쳐 '정신건강 바로 알기' 시리즈를 싣습니다.
첫 회는 조기 정신증에 시달렸던 20살 새내기 여대생의 경험담과 치료'상담에 대한 이야기다. 조기 정신증은 정신분열 등 정신증이 발생했지만 그 시기가 오래되지 않은 초기 상태의 질환을 말한다. 대개 뚜렷한 정신병적 증상이 드러나기 이전과 초발정신질환(정신증 발병 후 3~5년 이내) 시기로 나타난다. 특히 청소년기 및 초기 성인기는 정신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은 시기로 알려져 있다. 흔히 정신분열증으로 알고 있는 '조현증'의 경우, 10~35세 사이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1남2녀 중 막내로 오빠, 언니와 함께 평범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 그후로 지금까지 서로 생사를 모르고 지낸다. 어머니 혼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우리 삼 남매를 사랑으로 키우셨다. 오빠는 00공단에서 근무하고, 언니는 미용실에서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어머니를 도와 나를 보살펴주었다.
평범하지만 행복하던 내 삶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새내기 생활을 시작하던 올 4월 무렵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이 너를 해치려고 한다. 위험하다. 네가 먼저 공격해라!"
다양한 내용으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다. 정체 모를 목소리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함부로 외출할 수도 없었다. 밖에 나가기를 꺼리고,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어머니는 걱정스런 나머지 정신과에 가보자고 했다.
평소 생각하던 정신과는 철창이 있는 너무나 무서운 곳이었다. 선뜻 그곳에 갈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안내문을 보게 됐다. 우리 동네에 있는 '중구정신건강증센터'에 대한 안내글이었다. 아무래도 병원보다는 덜 두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서 찾아갔다. '정신보건전문요원'이라고 소개한 선생님과 상담하면서 정확한 평가, 치료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이용을 권유받았다. 편견 속에 있던 정신과와 실제 모습은 많이 다름을 알게 됐다.
◆왜 하필 내게만 이런 일이
병을 이해하고 증상 관리, 사회생활 복귀 등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어머니와 담당 선생님이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꾸준히 설득하면서 정신과 병원을 통해 진단'치료에 나섰고, 정신건강증진센터 이용도 시작했다. 매주 3차례 4개월간 센터에 있는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치료도 병행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빈도와 강도가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내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평범한 대학생이던 내가 어쩌다가 정신과 환자가 된 걸까?' 등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증상을 경험했다는 사실, 증상이 있을 때의 모습 등이 떠올라 심하게 우울해지기도 했다. 외래 치료를 가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싫어졌다.
하지만 센터의 지속적인 '사례관리서비스'를 통해 초발정신질환의 경우 재발 예방과 증상 관리를 위해서 치료와 투약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해서 또는 재수가 없어서 병에 걸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병을 잘 관리하고 재발을 예방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 꾸준히 치료를 받기 시작하자 목소리가 들리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스스로 병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지속적 치료 통해 일상생활로 복귀
센터 선생님과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병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몇 개월간 경험한 일들, 목소리가 들리면서 겪었던 불안감, 치료 중에 겪었던 수많은 감정, 병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경험과 감정들을 털어놓으면서 선생님에게 정서적 공감을 받을 때가 많았다. 때로는 왜곡되게 생각했던 부분을 바로잡을 수도 있었다.
증상이 생긴 뒤 치료차 휴학했기 때문에 낮시간에 열리는 주간재활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었다. 병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부터 신체건강을 위한 운동, 미술,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은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스트레스 상황, 위기 상황 등에 대한 상담도 받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시선들 때문에 증상이 생겼을 때 피하거나 숨겨서는 안되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치료받고 적절하게 증상 관리를 한다면 이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자료제공=중구정신건강증센터 053)25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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