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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시티 대구 의료 100년] 마펫의 보고서

마펫 원장은 병원 경영에 주력했지만 환자들과 함께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사진 속 모습으로 미뤄볼 때 마펫 원장이 무의촌 진료 현장을 찾은 듯 하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마펫 원장은 병원 경영에 주력했지만 환자들과 함께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사진 속 모습으로 미뤄볼 때 마펫 원장이 무의촌 진료 현장을 찾은 듯 하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마펫 원장은 동산병원에 재직하던 중 매년 미국 북장로회에 연례 보고서를 제출했다. 단지 형식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병원 안팎에서 벌어진 일들을 마치 일기를 쓰듯이 꼼꼼히 적어놓은 기록물이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격동의 시기를 거쳐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와 병원의 발전상, 재정적 어려움 등이 마치 눈 앞에 펼쳐 보이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1957~1958년 연례 보고서 중 일부를 살펴보자. '피란 나온 과부 집사의 14살 먹은 아들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밤 교회에서 돌아오던 중 누군가 던진 돌에 맞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을 많이 다쳤다. 하지만 우리 병원에 와서 플라스틱 소재의 인조 눈으로 바꿔 낀 뒤 지금까지 불편없이 생활하고 있다.'

60살 된 김진태라는 노인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어느 교회의 장로이며, 그가 시무하는 교회의 신축 기성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먼저 200달러를 건축 연보로 바쳤다. 그러나 더 이상 바칠 게 없게 되자, 그는 눈을 팔거나 신체의 다른 어느 부분을 팔아서 건축 헌금으로 바칠 작정으로 우리 병원에 왔다. 우리가 눈을 빼줄 수 없다고 거절하자 그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한 끝에 결심한 것인데…"라며 앉아 울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일 그의 눈을 사주지 않는다면 아무나 필요한 사람에게 그냥 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 거절했다. 이러한 희생이야말로 이웃을 위해 봉사하려는 한국 교인들의 진정한 마음이다.'

보고서의 대부분은 병원을 위해 힘써 일하는 여러 사람들의 노고와 그에 대한 감사의 말로 채워져 있다. 마펫은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런 중에도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 늘 감사했다.

1960~1961년 보고서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울릉도를 찾아간 공중보건팀이 겪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10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포항항에서 출항한 뒤 밤새 북한 관할 수역에서 공포의 시간을 보내며 헤매다녔다. 만약 그때 공산군에게 붙잡혔다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일행 중 4명은 우리 병원 과장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짙은 안개 속에서 무사히 구해내 섬으로 갈 수 있게 인도해 주셨다. 주민 1만7천 명은 대부분 바다에서 최저생활을 하는 가난한 어부들이었다. 이들 중 1만2천 명을 진료해 주었다. 구강외과 변종수는 치과 진료를 하느라 밤을 새우기까지 했다. 얼마나 많은 이를 뽑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갯수를 말하는 대신 더욱 실감나게 "반 바게쓰(양동이) 가득히"라고 대답했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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