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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의 은퇴일기] 내복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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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핸 추위가 일찍 오려나 봅니다. 지난 주말 비가 내린 후 몰라보게 쌀쌀해졌습니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속담이 아주 맞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귓등으로만 듣던 속담이나 '입동'이니 '상강'이니 하는 절기들이 이제는 머리와 가슴에 박히는 걸 보니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자연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고 자연의 힘을 알아 가고 있는 것이지요.

자연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으니 최근 개봉한 영화 '올 이즈 로스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요트의 주인이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지요. 대사도 없고 출연자도 로버트 레드퍼드 한 사람입니다. 오로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담히 화면에 담아내고 있을 뿐입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인터뷰에서 자연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지요.

가끔 우산을 펼치며 혼자 웃곤 합니다. 비가 좋아서냐고요. 아닙니다. 우산을 보면서 자연 앞에 한없이 무력한 인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막무가내로 쏟아져 내리는 비를 향해 몸만 가릴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우산 하나를 펼치며 이를 피하려 합니다. 그 단순함에 웃음이 나는 것이지요. 우주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아주 작은 가리개 하나로 세찬 비를 막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나지 않습니까.

내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한 추위는 내복에 옷 하나 더 껴입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복 한 벌에 6℃의 보온효과가 있다니 거창한 과학이나 문명의 도움 없이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를 우산으로 가리듯 추우면 그저 한 겹 더 입으면 되니까요.

내복이나 우산이나 그 단순함에 있어서 닮았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아주 소박한 도구들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가리고 추우면 추위를 가리는 것들이지요. 거기에는 요령이나 꾀가 없습니다. 정직합니다.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이지요.

발열내복이 나오면서 젊은이들의 내복 구매도 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내복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전유물로 혹은 촌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최근에서야 그 누명을 벗고 20대들이 즐겨 찾는 품목이 되었다니 흥미롭습니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다는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거기에 남녀노소를 따지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김순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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