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이 서는 날이면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은 새벽밥을 먹고 장터로 향했다. 소 팔러 온 어르신을 비롯해 가을걷이한 잡곡을 돈으로 바꾸려는 아낙, 친구 따라 시장 나들이 나선 이들까지 5일장은 그야말로 시끌벅적했다. 5일장은 보통 오전이면 파장이다. 볼일이 끝나는 점심 무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향하던 곳이 있다. 바로 장터 어귀에 있는 국밥집이다. 쇠고기 국밥과 돼지 국밥, 순대 국밥, 선지 국밥, 소머리 국밥 등 쓰는 재료는 달랐지만, 장이 서는 곳에는 으레 장터국밥집이 있었다.
보통 십 리 이상을 걸어온 장꾼들의 출출한 속을 달래는 데는 장터국밥만 한 게 없었다. 장터 한 귀퉁이에 걸린 가마솥에서 나는 구수한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뼈와 고기 삶은 육수에 무와 토란, 파 등을 듬뿍 썰어 넣고 끓이다가 손님이 올 때마다 두툼한 고기 몇 점에 밥 한 그릇 말아 내는 장터국밥은 장날이면 맛볼 수 있는 서민들의 별식이기도 했다. 거기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오늘날 많은 5일장이 사라졌어도 도시 한복판에서도 '장터국밥' 메뉴를 내건 식당을 볼 수 있다. 음식은 맛과 정서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싸전만도 여러 집이 있을 정도로 큰 장터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쇠락했지요. 요즘은 지역 농산물 보따리 들고 나온 어르신들만 간간이 눈에 띌 뿐 분위기가 시들해졌어요." 성주읍 경산리 시장(2'7일 개장)에서 국밥집 '고바우'를 운영하고 있는 김우자(56) 씨는 "추억을 찾는 사람들 덕분에 가게는 잘된다"고 했다. 장꾼들은 없지만 국밥 맛을 잊지 못한 단골들의 발길이 꾸준하고, 장터국밥 잘하는 곳으로 소문이 나 외지 손님들도 꽤 찾아오기 때문이다. 장날,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이 찾아오는데다 대구나 구미, 칠곡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고바우는 사골과 돼지머리, 암뽕, 그리고 선지로 국밥을 끓이는데, 전남 해남 시래기가 들어간다. "비닐하우스 무 시래기는 물러 못 써요. 고소하지도 않고 단맛도 안 나 노지에서 자란 해남산을 사용하죠." 김 씨는 "오전에는 시원한 맛을 찾는 젊은 사람이 많고, 오후에는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막걸리를 안주 삼아 국밥을 먹고 있는 이원수(45·성주읍) 씨는 "옛날 아버지와 시장에서 먹던 그 맛이어서 수시로 찾는다"며 "막걸리에 국밥 한 그릇이면 하루가 든든하다"고 했다. 여수에서 왔다는 김진(26) 씨는 "여수의 국밥은 진한 데 비해 이 집 국밥은 시원한 맛이 나 해장을 겸해서 자주 들른다"고 했다.
▷토렴=밥에 더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며 데우는 '토렴'. 국밥의 경우 손님이 오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토렴'을 통해 건더기와 밥을 데운 다음. 마지막으로 국물을 부어 내놓는다. 이 '원조 레시피' 때문에 국밥은 따로국밥이 아닌 말아서 나오는 것이 좀 더 맛있게 느껴진다. 토렴은 단순히 '식은 밥을 녹이고 데우는 과정'만은 아니다. 언 밥을 뜨거운 국물에 녹이면 밥알 하나하나가 풀어진다. 풀어진 밥알에서는 녹말분이 새어 나오고 그 영양분은 국솥에 녹아든다. 뭉근한 불로 끓인 국물에는 모든 국밥의 영양분이 같이 섞여 하루 종일 끓는다. 그 과정에서 영양분들이 분해가 되고 소화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당연히 토렴을 한 국밥은 쉽게 소화된다.
1960, 70년대까지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토렴이 사라지고 있다. 대신 직화(直火)를 선택했다. 직화는 뚝배기 등에 음식물을 담은 다음 가스불로 펄펄 끓이는 조리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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