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진짜 주인공과 가짜 주인공'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어떤 행사에 가더라도 주인공은 보통 가장 결정적이고, 화려한 마지막 무대에 올라 관객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 내곤 한다. 이런 정도의 구성은 굳이 행사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다. 관객 또한 멋진 무대나 유명한 주인공을 보기 위해서 그 정도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는 큰맘 먹고 간 고급 식당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피타이저가 나오고 메인 요리가 나오고 다시 디저트가 나오는 것은 마치 어떤 공연을 보는 것처럼 순서와 진행에 규칙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은 마지막에 나와서 그 자리를 빛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간혹 주인공이 늦게 나와서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있다. '늦어도 너무 늦어!'라고 할 만한 그런 경우를 우리는 언론을 통해 꽤 많이 본 적이 있다. 누가 보더라도 주인공 역할만 하는 연예인이 기자들을 모아놓고, 제작발표회나 기자회견 등을 하면서 행사에 많이 늦는 경우이다. 그러면 언론에서는 그 연예인의 지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기사를 낸다. 특히 지각에 대해 그 연예인이 한마디 사과나 설명이 없을 때에는 그 연예인의 평소 습관이나 인성까지 거론하며 소위 말해 한 방 먹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에 따른 최소한의 사과 등 예의를 지키지 못했다면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약속을 지키고 예의를 다하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누리는 것이 많으면 지켜야 할 것도 많을 수밖에 없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사는 사람은 힘들다. 주목을 받는다는 것, 모두가 주시한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런 주목과 주시를 즐기거나 또는 그런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행동을 일삼는 가짜 주인공들이 있다. 공연이나 행사를 돕고 빛낸다는 명분하에 참석해서는 공연이나 행사를 방해하며, 관계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공연을 방해하는 그런 가짜 주인공들을 만난 적이 꽤 많다. 그들은 주로 공연장에 늦게 나타나고 공연이 시작되었는데도 떠드는 등 쾌적한 공연 관람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약속 및 예절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동을 취하곤 한다. 공연의 주인공은 공연을 준비해서 보여주는 주최나 주관 측 외에 이를 관람하는 관객도 포함된다. 해당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주인공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나 하나가 아니라 그곳을 찾은 모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공연의 기본적인 약속이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행사 진행 도우미들은 무척 괴롭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갑'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이다. 그 나름 고위 공무원, 어디 의원이라고 나타나는 분들은 공연 스태프가 가도 통제할 수도 없다. 누구인지 뻔히 아는 상태에서 뭐라고 말을 하기도 어려우니, 그분의 교양 수준을 믿으며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을 선택할 수가 없는 고충이 있다. 정말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한숨이 나온다. 태어나서 공연을 처음 보는 산골 어르신들도 아니다. 업무상 일주일에 몇 회씩 공연을 보러 다니는 높으신 분들이 그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공연 예절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때문이다.

'갑'이라는 그분들 때문에 공연이 늦게 시작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관객들은 공연팀 사정으로 공연이 늦게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VIP 좌석을 채울 그분들의 지각 때문에 늦어지는 경우도 꽤 있다. 그분들은 겉으로는 권위가 없는 척, 특별하지 않은 척을 하며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하고 행동하겠지만 사실 지각이라는 것 자체로 이미 큰 횡포를 부린 것이다.

그만한 위치에서 '몰라서 그랬다'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그런 사람들이 행정이나 정치 쪽에서 그 나름 문화예술계 전문가니 하면서 목에 힘을 주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다. 제발 그런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기본 소양을 키우기 바란다.

안희철/극작가 art-pl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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