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쯤 대구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인근 여관 밀집지역. 4, 5층 높이의 여관들 입구에 '달셋방 있음'이라고 적힌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월세를 주고 생활하는 한 여관방을 찾았다. 약 3㎡ 남짓한 공간에 작은 침대와 텔레비전이 있고 벽에는 외투 몇 벌이 걸려 있었다. 뇌졸중으로 인해 장애를 갖고 있는 이모(55) 씨는 식사를 위해 상을 차렸다. 작은 상에는 김치와 차갑게 식은 어묵볶음이 올라와 있었다. 하루 두 끼밖에 못 챙겨 먹는 이 씨에게 이날의 첫 끼니였다. 3년 6개월 동안 이 방에서 생활한 이 씨는 동대구복합환승센터가 들어서면서 내쫓기게 될 처지에 놓였다. 이 씨는 "몸의 반쪽은 움직일 수 없어서 일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매달 나오는 기초수급액 45만원 중 20만원을 방세로 내면서 생활하고 있다"며 "현재 형편으론 다른 방을 구하기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길거리로 내몰려=동대구복합환승센터 사업으로 인해 동대구역 인근 여관에서 장기 투숙한 월세 세입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세입자들은 사업 전부터 여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주거'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업자인 신세계 측은 이미 건물과 토지 소유자와 매매를 끝낸 상황이기 때문에 착공을 위해선 세입자들이 나가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세계복합환승센터는 착공을 위해 이달 19일 대구 동구 신천동 일대 여관 월세방 세입자 24명과 영세상인 49명 등 79명의 세입자를 대상으로 '명도단행 가처분' 신청을 대구지방법원에 냈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일대 건물과 토지의 세입자에게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니 나가 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신세계는 월세방 세입자들을 '불법점유자'로 명시하고 주거이전비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여관 세입자들은 가처분 신청을 중단하고 주거이전비를 보상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거이전비를 요구하는 근거 판례가 있기 때문. 2008년 서울행정법원은 사업시행인가 3개월 전에 이주한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토해양부장관에게 세입자 주거권을 보호하도록 권고를 내린 바 있다.
◆난방도 끊겨=김모(50) 씨는 2003년 전입신고를 한 뒤 10년 동안 월세 25만원을 내고 한 여관에서 살아왔다. 소유주가 신세계에 건물을 판 뒤부터 난방이 되지 않고 있어 이불과 전기장판에 의지해 겨울을 맞고 있다. 사업실패 후 신용불량자가 된 김 씨는 부인, 두 딸과 떨어져 살면서 노동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주민세와 지방교육세 등 세금도 꾸준히 납부해 왔다. 김 씨는 "노약자와 기초생활수급자, 신용불량자 등 어려운 사람들이 수년 동안 여관에서 살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불법점유자로 취급해 나가라고 한다"며 "세입자를 거주자로 인정한 법원 판례에 따라 주거이전비를 보상받아야 하는데 만약 그냥 쫓겨나면 추운 겨울에 노숙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 측은 이미 건물과 토지 소유자들을 상대로 매입을 끝냈고, 또 여관은 보상법의 대상인 주거시설이 아니라 숙박시설이라며 세입자들이 불법으로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명도단행 가처분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신세계 측 관계자는 "이미 공사가 지연되면서 사업비가 늘어난 상황이어서 불법점유한 세입자들이 자리를 비워줘야 착공을 할 수 있다"며 "세입자들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해 최대한 마찰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대구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법을 따지기 이전에 여관 세입자의 경우 생존권이 달려 있기 때문에 대책이 마련돼야 하지만 사업자가 직접 보상하는 방식이어서 대구시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번 주 내로 세입자 측과 신세계 측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서로의 요구와 입장을 조율할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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