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이야기로 시작할까 한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인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그야말로 고사 직전에 있었다. 1992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18.5%였고, 1993년은 고작 15.9%에 불과했다. 이러다가 한국영화는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한국영화를 공부해야 하는지, 아니면 포기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후 기적적으로 한국영화는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꿈의 점유율인 50%대를 오가게 되었다.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1960년대였다. 1년에 200편이 넘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영화관객도 정점을 찍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1970년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31편이었고, 1969년 총 관람인원은 1억7천300만 명이었다. 1인당 평균 관람 횟수가 무려 5.7회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영화는 무서운 추락의 길을 걸었다. 극장 숫자는 급격하게 줄었고, 제작편수는 100편 이하로 떨어졌으며, 1인당 평균 관람 횟수는 1.4회로까지 떨어졌다. 얼마나 시장이 줄었는지 쉽게 요약하면, 1인당 극장에 가는 횟수가 연평균 5.7회에서 1.4회로 줄어버렸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중후반까지 한국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가는 관객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심지어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봤다는 말조차 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프랑스영화나 미국영화는 관람했다는 자랑을 할 수 있었지만, 한국영화는 전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꾸준히 살아나더니 올해, 즉 2013년에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달 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의 통계수치에 의하면, 2013년 한국영화 관람객이 총 1억1천547만3천995명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1억 명을 넘어선 2012년의 기록을 이미 갈아 치웠다. 전체 매출에서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비율도 60%로 매우 양호한 상태이다. 더 기쁜 것은 외국영화 관객 수를 더한 총 영화 관람객 수는 1억9천181만1천811명으로, 처음으로 연간 2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1968년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 최근인데, 이제는 확실히 넘어선 것이다.
한국영화 시장이 커지고 한국영화가 이렇게 부흥하는 이유는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먼저 몇몇 선두주자들이 강하게 치고 나간 것을 들 수 있다. 올해 '7번방의 선물'이 1천280만 명을 동원했고, 이어 934만 명의 '설국열차'와 '관상'이 있었으며, '베를린'(716만 명),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 명), '숨바꼭질'(560만 명), '더 테러 라이브'(557만 명), '감시자들'(550만 명) 등이 뒤를 이었다. 작년에 5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고작 3편이었던 것에 비해 그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장르도 가족드라마, SF영화, 사극, 첩보물, 스릴러, 서스펜스 등 다양하다.
다음으로 영화 관객층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의 관객층은 20대가 제일 많았고 다음이 30대, 그다음이 10대였지만, 지금은 30대가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 그다음을 20대, 50대, 10대 등이 차지한다. 10년 전 영화를 봤던 20, 30대가 10년이 지나면서 고스란히 30, 40대 관객으로 이동해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현상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세대는 영화를 오락으로 보기도 하지만, 영화의 미학적'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밝은 눈을 지닌 마니아층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것은 장점과 단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인데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들 수 있다. CJ, 롯데 같은 대기업이 극장업에서 시작해 투자, 배급에 이어 제작까지 하면서 영화를 둘러싼 환경이 안정화되었다는 점을 들어야 한다. 지금은 베드타운에도 대부분 극장이 들어서 관람 환경을 넓혔고, 제작에서도 대기업의 시각으로 시나리오에서부터 제작까지 관리하면서 위험 리스크를 줄여나갔다. 지금은 터무니없이 황당한 영화를 극장에서 거의 볼 수 없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대기업의 역할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이 한국영화의 신황금기라고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지금 한국영화는 관객이 늘고 시장은 커졌지만 엄밀히 말하면 조금씩 창의성이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대기업 자금으로 영화를 만들고 대기업 라인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다 보니 대기업의 시각에 맞는, 즉 위험성이 덜한 영화를 제작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게다가 한 편의 영화가 꽉 짜인 구조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부분에서 강하게 튀는 경향의 영화가 흥행하면서 영화적 완성도가 높은 영화를 만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스크린 독과점은 또 어떤가? 이제는 정말이지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해외시장 진출은 거의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이 한국영화 산업화의 안정화 단계인지, 획일화 단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영화평론가'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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