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처녀와 골동품'.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스물여섯 살 김지혜 씨는 골동품에 푹 빠져 산다. 지혜 씨는 조상들의 손때 묻은 물건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조상들의 정성과 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귀한 보물과 인생을 함께하기로 했다. 시간만 나면 역사와 문화재를 공부하고 찾아다닌다.
◆입문 2년여…토기 연대는 알 정도
지혜 씨는 언제부턴가 가게나 집을 방문하면 인테리어보다 소품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도자기나 고서화 등에 먼저 눈이 가는 것.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유심히 관찰한다. 마치 보물이라도 만난 것처럼 살펴본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집 모양이나 예쁜 침대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골동품에 관심을 가진 후부터는 예쁜 장식장이나 침대보다 옛날 것에 눈이 돌아간다. "오래되고, 귀하고, 예술적인 것에 관심이 가요. 예쁜 것보다 오래된 골동품이 좋아요."
지혜 씨는 현재 대구 남구 이천동 골동품거리 '용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골동품을 사고파는 '용문사'는 아버지가 사장이고 지혜 씨는 아버지에게 문화와 골동품 등에 대해 배우고 있다. 머지않아 골동품 가게를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을 계획이다. "오빠와 언니가 있지만 제가 이어받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생소하고 재미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생겨요. 어려운 게 있다면 공부할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고 있어요."
2년밖에 안 됐지만 골동품에 대해 제법 가치를 부여한다. "아직은 멀었지만 토기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보면 연대 정도는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지혜 씨는 대학에서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했다. 골동품엔 관심이 없었다. "골동품은 어릴 때 하잘것없는 '그것'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저 오래된 물건 정도로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가끔 집에 오래된 궤짝이나 그림 등을 가져와 집 한구석에 놔두거나 걸어두면 싫었어요. 지저분하기도 하고 특히 낡고 남의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발로 차버리기도 했어요."
어느 날 골동품이 지혜 씨 눈에 들어왔다. 관심을 갖게 되니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하잘것없이 보이던 것이 어떤 의미로 보였어요. 3인칭에서 2인칭으로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보면 볼수록 흥미있고 가치가 느껴져요."
그 후로 골동품에 빠져들었다. "골동품은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거잖아요. 다 예술품이죠. 특히 만든이의 정성과 혼이 배어 있어 배워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성격도 달라졌다. "매사 싫증을 잘 느끼는데 골동품을 접하고부터는 진득해졌어요. 금방 싫증을 느끼는 건 골동품이 아니에요."
50년을 골동품과 함께해 온 아버지 김성용(72) 씨는 "지혜가 전공을 살려 취직하거나 가게를 운영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골동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달라지더라. 지켜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골동품 사이에 컴퓨터가 놓여 있다. 온라인으로 골동품을 판매하기 위해 지혜 씨가 설치한 것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 코베이(www.kobay.co.kr)에 판매할 물건을 올려 판매도 하고 사기도 한다. 개인 간 또는 경매장에서 사고파는 아버지와는 다른 거래방법이다. 김성용 씨는 "인터넷 판매는 생각지도 못했다. 품도 적게 들고 합리적인 가격을 받을 수 있어 여러모로 좋다"며 활짝 웃었다.
◆잠든 가치 찾아내 현대인과 공유하고파
지혜 씨는 최근 경매에서 배운 것이 있다. "한 번은 4만원에 구입한 나무 뚫는 기계를 10만원이나 받아보려고 경매 사이트에 올렸는데 대박이 난 거예요. 박물관급이라며 100만원에 낙찰됐어요. 다음에 그것보다 큰 것을 올렸는데 훨씬 적은 금액이 나왔거든요. 희소성의 가치를 깨달은 경매였어요."
지혜 씨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전문지식을 획득하는 한편 경매에 참가해 실질적인 공부도 하고 있다. "책을 통해 얻은 지식보다 직접 보고 만져보는 것이 공부가 많이 돼요. 그리고 선입견 없이 보는 것이 중요하고요."
지혜 씨는 요즘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골동품은 대개 한자로 적혀 있어 한자를 알아야 기본적인 내용을 알 수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왜 한자공부를 등한시했는지 후회돼요."
앞으로의 계획도 털어놨다. 골동품 거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 "골동품이 집에 있으면 하나의 장식품에 불과하지만 세상에 나오면 보물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으니 새로 탄생하는 거죠. 특히 학교나 박물관에 있으면 새로운 가치가 생깁니다.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고 보관하기도 쉽고. 보물이 개 밥그릇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죠. 발을 들여놨으니 뭔가 이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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