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 향토음식의 산업화] 성공 사례로 보는 한식 세계화 조건

적지서 고군분투 K-food "伊·태국처럼 정북 좀 도와줬으면…"

한식 특유의 한상 차림은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한식 세계화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아쉽다. 국내 한식 전문식당 못지않게 풍성하게 차려 내는 하와이 미가원 식당 전주비빔밥과 동래파전. 온대구찜 상차림. 점심 시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한식 특유의 한상 차림은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한식 세계화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 마련이 아쉽다. 국내 한식 전문식당 못지않게 풍성하게 차려 내는 하와이 미가원 식당 전주비빔밥과 동래파전. 온대구찜 상차림. 점심 시간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지구촌 세계인들의 입맛을 잡고 있는 이탈리아와 일본, 중국, 태국은 음식 강국들이다. 이 나라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국의 음식을 명품화'세계화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 없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비해 해외 'K-food 레스토랑', 즉 한식당 주인들은 고립무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모국의 지원 체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한 이탈리아 전문 레스토랑이나 일식집, 타이푸드 식당과 맨몸으로 경쟁해야 한다. 해외 한식당들은 성공 비결을 '하드 워크'(열심히 일하는 것!)라고 입을 모은다.

◆뉴질랜드 코리안 푸드 전문점 '야기이야기'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로토루아시 히네모아 거리에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호빗의 집'이 있다. 그 건너편에 자리한 코리안푸드 레스토랑 야기이야기는 대표적인 한식 전문식당으로 유명하다. 이 가게 주인이자 주방장인 신미숙(53'여) 씨는 20년 전인 1990년대 초반 이곳으로 왔다. 사회복지 분야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유학을 왔다가 직장을 얻고 눌러앉았다가 한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신 씨의 하루는 오전 일찍 시작된다. 인근 일식점과 태국 음식점보다 깨끗한 레스토랑이 돼야 하기에 청소부터 음식 재료 준비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타이푸드 식당은 태국 정부에서 지정한 유통업체가 돌아다니며 정기적으로 자국산 농수산물을 저렴하게 공급해 줘요. 음식 재료뿐 아니라 홍보 책자와 태국 전통문양이 들어 있는 액자와 현수막, 전통 공예품도 수시로 지원합니다. 저로서는 부럽고 아쉬운 점이죠."

대나무 수묵화와 채색 동양화 등 한국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한식당은 120석 규모다. 관광 가이드를 하는 남편 윤장호 씨의 도움을 받아 단체손님을 받기도 하지만 단골손님 대부분은 현지인이다."인구가 4만 명인 로토루아에는 한식집이 4개, 일식집이 7개예요. 그 외에도 인도, 타이, 이탈리아, 베트남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로토루아 시내에 외국 음식점은 20여 곳. 수많은 외국 음식점과 경쟁이 치열하다. 세금과 관리비 등 월 700만원이나 되는 임대료를 감당하려면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수밖에 없다.

◆하와이 한식 전문점 미가원 사장 부부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쿠히오애버뉴에서 한식당 '미가원'을 운영하는 김순호(53) 씨도 고군분투하기는 마찬가지다. 김 씨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와이로 왔는데 일만 하다가 세월을 다 보냈다"고 했다. 같은 골목에서 이탈리아, 일본 음식점과 무한경쟁을 벌이는 형편이라 김 씨와 아내 이미호(52) 씨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파묻혀 산다.

"음식 재료는 미국 LA에서 공급받아요. 재료가 한국산이 아니어서 손님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죠. 삼겹살 구이를 할 때 가끔 손님들이 상추가 왜 이러냐고 소리 지를 때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 씨는 "싱싱한 음식 재료를 구할 수 없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두부김치나 해물파전, 잔치국수 등 뭐든지 주문하는 대로 다 해내는 김 씨는 만능 주방장이다. 한정식에는 LA갈비찜과 불고기, 치킨, 만두, 미트볼, 생선전, 샤브샤브는 물론이고 갈비와 조기구이, 게장, 생선전, 찌개, 김치 등 20여 가지에 이르는 음식이 상에 오른다. 게다가 양념갈비, 곱창구이, 냉면, 쫄면, 잡채, 우동, 칼국수, 비빔밥, 볶음밥, 아귀찜, 꽁치구이 등 메뉴판에는 120여 가지의 한식이 나열돼 있다. 모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외국인들에게 한식은 다채로운 메뉴로 밀어붙이는 것도 경쟁력이란다.

하지만 김 씨 부부는 단 한 번도 컨설팅이나 메뉴 표준화 등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한식 세계화 사업의 안내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지원요? 한국 정부에서 우리에게 왜 지원을 해 주겠어요?" 한식 세계화가 가져 오는 국격 신장이나 무형의 가치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한식을 소재로 음식 강국들과 매일 싸우는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데도 공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 푸드 코리안은 한식 세계화의 첨병

일본 오키나와 나하시의 류큐족 왕궁 슈리성 입구에 자리한 한식 전문점 '설악산'도 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다. 사장 홍창수(62) 씨는 "강원도 속초에서는 잘 알려진 유력인사였는데도 정부 지원은 처음부터 없었다"고 했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코리안푸드 레스토랑 '일막'의 주인의 입에서도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한식 세계화 사업단이 지난 5년간 쏟아부은 예산 800억원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한식 세계화는 향토음식 산업화를 이끄는 견인차다. 또한 한식 전문점의 해외 진출은 물론이고 국내산 농'축'수산물의 국제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한식의 세계화 사업은 우리 농수산물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고 이를 통해 농수산물의 수출길을 개척할 수 있다. 특히 해외 한식당은 국내산 농축수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네트워크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해외 한식당을 지원하고 새로운 한식당 개설도 적극 도와줘야 하는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게 해외 한식당 주인들이 공통된 목소리다.

태국 문화부 찬수다 룩스폴무앙 행정차관은 "태국 푸드 정책의 핵심은 해외 타이푸드 레스토랑을 더 많이 확대하고 태국산 농수산물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타이푸드 음식점에 공급하는 태국산 농수산물 유통 규모는 연간 2조원에 이른다. 태국은 이미 11년 전 '키친 오브 더 월드'(Kitchen of the world)라는 타이푸드 세계화 사업에 나서면서 세계 태국음식점을 네트워크화하고 자국산 농수산물 수출 기지로 활용해 왔다.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사진작가 강병두 plmnb12@hanmail.net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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