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등대지기

지난겨울 이집트 여행을 했다. 우리 일행이 카이로에 도착한 날이 마침 이집트 민주화 혁명 기념일이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의 물결을 타고 이집트 또한 북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다. 시위대가 철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은 람세스 역의 황량한 플랫폼에서 추위에 떨며 오지도 않는 기차를 6시간이나 기다렸다. 밤이 깊어서야 겨우 도착한 기차를 타고 우리는 나일강 남단까지 내려갔다. 애스원 댐과 거대한 아부심벨 사원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나일 강을 거슬러 이집트 최북단의 알렉산드리아로 올라왔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거점으로 이집트를 점령한 후 자신의 이름을 따 새로 건설한 수도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오래도록 고대 지중해 지역의 무역과 문화, 예술,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BC 283년에 건축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라는 파로스 등대이다. 또한 알렉산드리아는 AD 40년경 예수의 제자 마가에 의해 이집트에서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해진 곳으로,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와 달리 콥트라 불리는 독특한 종파를 이루고 있다.

파로스 등대는 높이 130m가 넘는 대리석 건축물로 알렉산드리아의 부와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다. 파로스 등대는 압도적인 크기뿐만 아니라 암초가 많은 지중해에서 무역선들을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하여 알렉산드리아가 중계 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알렉산드리아는 문화와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고 학문을 융성시킬 수 있었다. 중학생 때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은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 '무희 타이스'도 바로 이 알렉산드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소설은 알렉산드리아를 방탕하고 타락한 곳으로 그렸다.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는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3막에 나오는 '타이스의 명상곡'은 수도승 아타나엘의 인도에 따라 환락의 생활에서 벗어나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타이스의 경건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 때 온 국민이 즐겨 불렀던 '등대지기'는 파로스 등대와는 거리가 먼 작고 소박한 등대와 그것을 묵묵히 지키는 사람의 노고를 노래한다. 등대지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간에 등대를 떠나지 않고 고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얼핏 멋있고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대단한 인내심과 성실함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등대지기는 칠흑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에게 밤새 빛을 비추며 이 일을 필생의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르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어둠을 지키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는 어두운 밤바다에 빛을 비추며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의미와 상징이 개입될 수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의 밤바다에서 난파하고 있을 때 멀리 보이는 등대 불빛은 누군가 내게 내미는 구원이자 희망의 손길이다. 빛은 바르고 밝고 참된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빛을 비추는 자의 모습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이며 거룩한 성자의 모습으로까지 승화되는 것이다.

이 노래는 창가로 불리다가 해방 후 군정 때부터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과서에 실리면서 전 국민의 애창곡이 될 수 있었다. '등대지기'는 찬송가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강하다. 가사를 음미하며 부르다 보면 찬송가 유래설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TV에서 아이슬란드 최북단 어촌마을의 겨울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해를 전혀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날들을 지나 처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주민 성가대가 잔잔한 목소리로 빛을 찬양하고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서영처 영남대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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