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황진이의 일기일회(一期一會)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 내어/ 춘풍 이불 안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고운 임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이 시는 피천득 선생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보다 낫다고 칭송했던 황진이의 시조 '야지반'(夜之半)이다. 동짓달의 외로운 밤을 반쯤 잘라내어 이불 안에 차곡차곡 잘 간직해 두었다가, 달도 없는 밤 등불 아래로 정든 임 오시거든 펼쳐 내어, 짧은 봄밤에 이어 붙여 사랑하는 이와 긴긴 밤을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임을 기다리는 긴 겨울밤의 정경과 짧기만 한 연인과의 봄날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황진이의 시적 수사는 절묘하다 못해 차라리 오묘할 정도다.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다는 애틋하고도 절절한 그리움을 황진이는 특유의 맛깔스러운 어휘로 노래하고 있다.

며칠 전 절 집안에서는 작은설이라는 동지를 맞아 팥죽을 쑤어 불공을 올리며 다가오는 새해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런데 요즘을 사는 젊은이들은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는 챙겨도 동짓날 같은 우리의 명절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하지 않았던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조상을 몰라보고, 우리의 명절을 버리면서 어찌 효도하는 후손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에 불가(佛家)의 유명한 법문을 소개하는 바이다.

'전생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지금 짓는 것이 그것이다.' 어제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이치를 거스르다 생겨난 현실의 고통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업(業)인 것이다.

동지섣달의 차가운 기온이 내려갈수록 그리움은 올라만 가는데, 그 애타는 마음을 황진이처럼 녹여내지 못한 채 멍든 가슴팍으로 휑한 바람만 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식은 많은데 지혜는 모자라고, 돈 버는 법을 배웠지만 나누는 법을 잊어버렸다.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모른 체 지나쳐가고, 사람보다는 스마트폰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져 간다. 우체국 계단에서 어디론가 엽서를 쓰던 정성은 사라지고, 휴대폰 문자로 메마른 낱말들을 남발하며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일기일회'(一期一會)! 생사윤회의 세계에서 인간이 태어나 다음 세상에 갈 때까지의 한 주기를 '일기'(一期)라 하고, '일회'(一會)는 한 번의 만남을 이르니 '일기일회'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인연을 소중히 가꾸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현하신 사랑과 평화를 되새기는 성탄절도 지나고, 이제 계사년(癸巳年)이 다 저물어 간다. 칼바람에 문풍지 에이는 한겨울일지라도 부디 모두 온정으로 가득한 세밑을 가꾸시고,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지거 스님/청도 용천사 주지'동화사 부주지 yong1004w@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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