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전원 10년, 실패한 실험] <中>씨마른 공중보건의사

문경지역 치과 공보의 2명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지난달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호계보건지소 앞 구강검진 이동 버스 안에서 공중보건의사 권재원(25) 씨가 환자 황재훈(72) 씨의 치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호계보건지소 앞 구강검진 이동 버스 안에서 공중보건의사 권재원(25) 씨가 환자 황재훈(72) 씨의 치아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을 도입할 때 이공계 붕괴 현상과 함께 예상됐던 문제가 있다. 바로 무의촌 해소를 위해 1980년부터 농'어촌 의료 사각지대에 배치됐던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대학원 체제가 되면서 입학 전 군복무를 끝낸 남학생들이 많아진데다 의전원 전체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까지 늘면서 공보의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기획취재팀은 경북 지역을 찾아 공보의가 얼마나 부족한지 현장 취재했다.

◆보건지소에 치과 의사 없다

지난달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호계보건지소. 보건지소 앞에 '구강보건 이동진료'라고 적힌 대형 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이 버스가 도입된 것은 2010년. 교통이 불편하거나 병원을 자주 찾기 어려운 지역을 찾아 주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움직이는 보건소'다. 빠듯한 지자체 형편이지만 예산 1억7천만원을 들여 이 버스를 구입한 가장 큰 원인은 문경 지역에 배치되는 치과 공보의가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 지역에 배치된 공보의 19명 중 치과의는 단 2명으로 보건소에서만 근무한다. 일반 의과와 한방의 등은 문경 지역 보건지소 9곳에 골고루 배치돼 있지만 치과의가 있는 보건지소는 한 군데도 없다. 2년 전만 해도 문경에서 가장 오지에 속하는 '동로보건지소'에 치과 공보의가 있었다.

권자경 문경시보건소 구강보건실 담당자는 "예전에는 교통이 불편한 보건지소에 치과 공보의를 한 명 보냈지만 3명에서 2명으로 치과 의사도 줄고, 이용자도 줄면서 보건소에서 검진 차량을 타고 '출장 진료'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치과 공보의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2년 차 치과 공보의 권재원(26) 씨가 담당하는 일은 불소 도포 및 65세 이상 어르신 스케일링 등 보건 사업으로 출장이 잦다. 보건지소 9곳에 치과 의사가 없으니 이 공백을 권 씨 혼자 메우는 셈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 진료를 나서면 오전 시간대에만 50명이 넘는 환자가 몰려오기도 한다. 권 씨는 "혼자 진료를 하니 한꺼번에 수십 명의 환자가 몰려오면 한 명당 10분씩 진료하는 것도 힘들다. 스케일링이나 치아 홈메우기처럼 단순한 예방 사업은 할 수 있지만 치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어르신들은 치아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한 사람씩 신경 써주지 못하니 진료하면서도 마음이 안 좋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치과 공보의 이진형(29) 씨가 하는 일은 보건소 진료다. 항상 보건소로 환자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이 씨는 "지금 각 보건지소에 치과 의사가 없다 보니 예전에 보건지소에 갔던 환자들이 다 보건소로 오는 상황이어서 내가 없으면 환자들이 허탕치고 가기 때문에 연차를 제때 쓰기도 힘들다"며 "멀리서 힘들게 온 어르신들에게 한 번에 끝날 치료가 아닐 경우 계속 보건소에 나오라고 말하기도 죄송하다"고 말했다.

◆경북지역 치과 공보의, 13년 만에 절반 줄어

군 지역으로 갈수록 공보의들이 공공 의료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커진다. 각 지역의 영문 이니셜을 따 일명 'BYC'로 불리는 봉화와 영양, 청송 지역은 대구 등 도시와 멀어 공보의들 사이에서 배치 기피 지역으로 손꼽힌다. 병원이 귀한 지역인 청송군은 보건의료원이 진료와 보건 사업은 물론 입원 시설까지 겸해 사실상 병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3년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 따르면 각 지역 보건소에 치과 공보의는 1인 이내로 배치하고, 보건지소에는 치과 공보의를 신규 배치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을 바꿨다. 청송의료원 관계자는 "지난해에 치과 공보의가 총 3명이었는데 올해는 정부 지침이 바뀌면서 2명으로 줄었다. 치과 공보의 1명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청송 오지에 있는 보건지소로 출장을 가 진료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도청에 따르면 2000년 535명이었던 공중보건의가 2013년에는 559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치과 공보의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2000년 121명이었던 숫자가 2013년에는 67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 가장 큰 원인은 치의학전문대학원(이하 치전원) 도입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온 군필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취재 결과, 문경 지역의 공보의 2명은 치전원 출신이 아니라 치의예과 졸업생이었다. 경북도청 보건행정과 김영길 주무관은 "의과 공보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노인요양병원 등 민간의료기관에 근무하던 공보의들을 지소와 보건소에 최우선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부족 현상이 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치과 공보의들은 눈에 띄게 줄어 보건지소 여러 곳을 공보의 1명이 담당하며 출장 진료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김수용기자 ksy@msnet.co.kr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공중보건의사: 병역 의무를 대신해 3년 동안 의료 취약 지역인 농어촌 지역의 공공보건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일반 의사, 한의사, 치과 의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면 공중보건의사가 될 수 있다. 공중보건의사제도는 1978년부터 시행되었고, 1980년부터는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의료취약지역을 중심으로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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