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내 기억은 항상 옳을까?

난 내 기억이 항상 옳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뇌신경과학을 공부한 이후로 난 '내 기억이 맞다'는 확신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잘못 기억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처럼 차라리 모르면 목소리라도 커지는데 알기 때문에 오히려 꼬리를 쉽게 내리는 꼴이 되어 억울할 때도 있다.

흔히 유도심문을 하게 되면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들에게 교통사고 영상을 보여 주고 본 대로 증언하라고 할 때 사고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게 되면 증언자의 기억이 왜곡되어 사고와 연관된 세부적 사항을 착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차가 서로 부딪칠 당시 속도가 어떠하였나?"라는 질문과 "차가 서로 충돌하여 찌그러질 당시의 속도가 어떠하였나?"라는 질문을 비교해보면, 후자의 경우 사건 목격자들이 차 속도를 더 높게 추정하게 되거나 심지어 유리가 깨지지 않았는데도 유리가 깨진 것을 봤다는 진술이 나오기도 한다.

심리학에는 기억의 왜곡과 관련된 '오보 효과'란 용어가 있다. 사람들이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어 버리면 사건에 대한 기억이 변질하여 잘못된 정보를 회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머릿속에 원래 사건이 저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잘못된 정보가 들어오면 기억 속에 두 가지 사실이 겹쳐져 버려 무엇이 사실이었고 무엇이 잘못된 정보인지 헷갈리게 되거나 새로운 정보로 대체된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이 흐릿해져 질문하는 사람이 제시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짓 기억이 뇌 속에 뿌리박혀 더욱 윤색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여러분에게 과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장소인데 가족이나 친척들이 같이 가서 캠핑도 하고 재미있게 놀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하자. 그런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지만 듣는 당사자는 그것이 사실처험 기억하게 되고 거기다 세부적 사항이나 감정을 덧붙여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정보를 기억에서 끄집어 낼 때 보고 들을 당시와 똑같이 회상하면 좋겠지만 기억은 재구성된다. 그래서 종종 뇌에 담길 때와 동일한 정보가 인출되지 않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생각, 믿음 기대 등에 의해 과거의 기억이 왜곡된다. 기억에 관한 한 실험에서 '사탕, 시다, 설탕, 쓰다, 맛좋다, 맛보다, 이, 좋다, 꿀, 소다, 초콜렛, 하트, 케이크, 먹다, 파이'라는 단어를 보여주고 나서 '맛보다'라는 단어가 리스트에 있었냐고 질문했더니 86%의 피실험자가 '그렇다'라고 대답했고, 84%가 '달콤하다'는 단어도 리스트에 있었다고 잘못 기억하였다. 이제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자신의 기억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윤은영(한국뇌기능개발센터(구 한국뇌신경훈련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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