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들이 대신 분향소…사라진 '가정의 달 특수'

어린이날·대학축제 등 세월호 여파로 올스톱

5일 대구 두류야구장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취소됐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5일 대구 두류야구장에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취소됐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어린이날, 부처님 오신 날로 이어진 황금연휴가 낀 5월은 세월호 침몰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애도와 빠른 사태 수습을 기도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그 어느 때보다 숙연하다.

매년 5월 열리던 어린이날 행사와 기관단체, 동문회, 기업이 주최하는 체육대회 등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면서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도 조심스럽게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이벤트업체 등 각종 행사 관련 업체들은 잇단 행사취소로 일감이 끊겨 속앓이를 하고 있고, 지방선거 특수를 기대했던 선거 관련 업계도 전례 없는 조용한 선거 분위기로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취소 이어진 행사장

5일 오후 1시 대구 달서구 두류야구장. 지난해 같았으면 어린이날 행사로 수천 명이 북적여 발 디딜 틈 없었을 이곳은 '푸른 5월의 동심(童心)'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지 못한 채 숙연한 휴일을 맞았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올해 어린이날 행사는 취소됐습니다'라는 입구에 내걸린 플래카드를 뒤로 20여 명의 시민은 자녀와 캐치볼을 하거나 야구장 주변을 걸으며 차분하게 가족애를 나누고 있었다. 초등학생 두 아들과 이곳을 찾은 김승진(43'달서구 송현동) 씨는 "아이들과 어린이날에 이월드에 가기로 했으나, 이를 취소하고 대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합동분향소를 들렀다"며 "어른들의 잘못으로 꿈도 펴보지 못하고 희생을 당한 어린 학생들이 안타까워 웃지 못하는 어린이날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예년 같으면 기업의 체육대회로 분주했을 수성구 수성구민운동장도 조용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3일 오후 1시 운동장을 찾았을 때 요란한 응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드문드문 걷는 주민들의 모습이 황량하기까지 했다. 주민 김금숙(62) 씨는 "이 맘 때면 축구를 즐기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운동하는 이들이 많아 북새통을 이뤘다. 올해는 세월호 침몰 참사 여파로 조용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수성구민운동장 관리사무소 김선기 주임은 "지난해에는 4, 5월 대관이 10건 이상 있었는데, 올해는 대관이 동우회가 예약한 3건뿐이다"며 "지난달 말에는 지역의 한 건설업체가 체육대회를 예약했는데 세월호 참사 때문에 취소했다"고 했다.

세미나나 동창회 행사 등으로 대목을 기대했던 호텔들도 침울하다. 수성구의 한 호텔은 지난해보다 행사가 30% 정도 줄었다. 호텔 관계자는 "4, 5월은 대목인데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모객 마련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북구의 한 호텔 관계자는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 등으로 가족 단위 식사 예약이 다 찼어야 했지만, 올해는 예약 자체가 드문드문하다"고 했다. 겨우 잡힌 행사도 규모가 대폭 축소돼 그야말로 조촐하게 치러지고 있다. 이 호텔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고객이 뷔페 손님을 300명 정도로 잡았다면 지금은 200명으로 줄인다"고 했다.

◆일감 잃은 이벤트업계

조용한 5월 분위기에 이벤트업체 종사자들의 속앓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감이 크게 줄어 손해를 보고 있지만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를 의식해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하고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 역시 조용한 분위기로 진행되면서 선거 관련 업체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어린이날 등의 행사 진행을 총괄하는 한 이벤트업체는 갑작스런 행사 취소 통보를 최근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이 업체 대표는 "5월에 진행할 행사가 10억원 상당 규모로 연간 수입의 3분의 2 수준인데, 행사 취소 요청으로 피해가 막심하다"며 "더욱이 무대를 세우는 등 행사 준비가 시작됐으면 실행비라도 받을 수 있는데, 기획서와 제안서를 써주는 단계에서 행사 준비를 접어야 하다 보니 비용을 청구할 수도 없어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벤트업체의 하청업체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특히 음향업체들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비를 늘리는 등 올해 추가 투자를 많이 했으나 후보자나 선거 캠프 측과의 장비 대여 계약을 맺지 못해 사업을 접어야 할 지경이다. 음향장비업체를 운영하는 A(48) 씨는 "구청장 선거에 나서는 한 후보가 선거유세 차량을 1대만 운영하겠다며 차 한 대에 필요한 음향장비만을 요청했다"며 " 지방선거를 보고 수천만원을 들여 장비를 새로 들여왔는데, 이러다간 빚더미에 앉게 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 경조사 등을 촬영하는 프리랜서 영상촬영가 이모(39) 씨는 "지난달 말부터 20일 동안 변변한 행사 하나 맡지 못했다"며 "동종업계 사람 중에는 대리운전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분위기가 풀릴 때를 기다리기도 한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후 불꽃놀이가 사실상 금기시되면서 폭죽업체들도 개점휴업상태다. 1년 중 어린이날이면 가장 많은 폭죽을 쏘아 올렸던 이월드는 올해는 이 행사를 없앴다. 드문드문 열리는 대학 축제에서도 폭죽 사용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불꽃놀이 업체 대표는 "놀이공원은 어린이날 적어도 5천만원 정도, 대학축제는 1천만원 이상을 불꽃놀이에 쓰는데 세월호 참사 이후 계약이 전부 취소됐다"며 "5월이 연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직원 월급도 주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사회1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