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어린이날 선물 필요없어, 형! 빨리 돌아와"

[르포] 어린이날의 더 서글펐던 안산 시내

"어린이날 선물이요? 형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무슨 여행 간다고 했는데, 아직 안 돌아와요. 저녁마다 내 책가방 챙겨 주던 형이 없으니 불편해요."

어린이날인 5일 오전 단원고 인근에 위치한 고잔초등학교 2학년인 김모 군은 집과 인접한 형의 학교 정문을 찾았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2학년 형이 20일째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형 찾으러 나가고 엄마는 매일 집에서 울어요. 형이 학교는 올 것 같은데, 여기도 없네요. 빨리 와서 같이 밥 먹었으면 좋겠어요."

김 군은 단원고 정문에 방문객들이 적어 놓고 간 종이에 '형 돌아와. 같이 밥 먹자!'를 적어 놓고 발길을 돌렸다.

5월 5일 어린이날.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단원고 정문 앞에는 우유와 초콜릿, 과자, 소시지 등이 쌓였다. 캔커피에 붙은 메모지에는 "다혜야. 그동안 추웠다. 따뜻한 커피 마시고 천국에서 행복하게 있어"라는 글귀가 쓰여있었고, 딸기 우유 앞에는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지켜 주지 못해 다시 한 번 미안하다. 미안하단 말 밖에 못해 줘서 또 미안해'라는 메모가 있었다. '과제! 꼭 살아서 돌아오기' '이거 무한 리필이에요. 꼭 다 먹고 리필해 드릴게요'라는 희망 섞인 메시지도 있었으나, 글을 읽던 조문객들은 이내 눈물을 흘렸다.

일반인과 취재진 출입이 통제된 단원고 정문은 휴일임에도 활짝 열려 있었다. 운구차가 수시로 왕래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에만 학생 시신이 담긴 운구차 6대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나갔다. 수십 명의 학생도 등교해 차가 올 때마다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요. 애들이 얼마나 우는지. 또 부모들은요. 죽은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을 누가 알겠어요. 가족이 살아 있다는 것만 해도 이렇게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네요." 정문에 서 있던 한 자원봉사자의 말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에 있는 손자들이 놀러 온다는 것을 만류한 한 할머니를 만났다. 단원고 인근 무진빌라 3차 거주자인 할머니는 "집 밖에선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해. 어제 울음소리가 나서 밖을 내다보니 바로 앞 동의 한 남성이 아이 영정 사진을 들고 집에 들어가는 거야. 단지 주변에서 잘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안 보이면 혹시 재난당한 그 집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해"라고 말했다.

그 할머니의 말처럼 단지 내 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한적했다. 무진빌라 3차에는 10여 명의 단원고 학생들이 살고 있고, 이 가운데 4명의 2학년생이 현재까지 실종자 명단에 올라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를 모두 취소한 안산시에서 유일하게 붐비는 곳은 안산화랑유원지, 정부 공식합동분향소가 위치한 곳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득했던 나들이객들을 올해는 검은색 옷차림의 조문객들이 대신했다. 분향소로 가는 길목마다 근조 리본과 플래카드가 빽빽이 들어찼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분향소 안에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안하다. 미안해"라며 울먹이는 중년 남성부터 "80 먹은 나도 여태 있는데, 너희가 왜 벌써"라며 눈물을 훔치는 할아버지까지 일부 조문객들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분향소 안에서 냉정을 찾은 사람들은 조문객을 안내하는 도우미뿐이었다. 한 도우미에게 물었다.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어찌 이리 차분하게 일 할 수 있느냐고. "처음에는 저도 많이 울었어요. 영정 사진의 애들 얼굴 한 번 보세요. 사진 옆에 놓인 국화꽃만 없으면 딱 졸업사진이에요. 아직 어린 티도 안 가신 영정 사진을 보면서 가슴 저미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애들 마지막 가는 길이잖아요. 우리가 질서를 지켜 드리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애들 마지막 가는 길, 잘 못 갈까 봐 버티고 버티는 거죠". 대답하던 그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정부합동분향소에는 어린이날 등이 있는 연휴를 맞아 조문객 행렬이 1㎞ 이상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조문객들은 분향소 주변에 수천 개의 리본을 달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 포털 사이트 다음에 만들어진 '엄마의 노란 손수건' 카페회원 80여 명은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체조문 뒤 침묵시위 행진을 벌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